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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자들은 주로 '리포트' '단신'으로 기사를 구분한다. '리포트'는 기자가 직접 내레이션을 하며 보도하는 긴 기사를, 단신은 앵커가 읽는 비교적 짧은 기사를 말한다. 나는 요즘은 편집부에 있지만, 취재부서에 있을 때 수없이 많은 기사를 썼다. 내가 썼던 리포트는 세월이 흘러도 대부분 내용을 기억하지만, 단신은 사실 워낙 많아서 시일이 조금 흐르면 뭘 썼는지 일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며칠 전 신문에 실린 초등학교 선생님의 칼럼을 보면서 오래 전에 썼던 단신 기사 하나를 다시 떠올렸다.  

2001
, 한 여중생이 당시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에 학교에서 남학생의 출석 번호를 1번부터, 여학생의 출석번호를 21번부터 하는 것은 남녀 차별이라며 시정해달라고 신청했다. 당시 남녀차별개선위원회는
`여성은 항상 남성 다음이라는 차별적인 감정을 심어줘 정신적인 피해를 줬고, 남녀를 구별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해당 학교에 이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나는 당시 여성부의 보도자료를 보고 의미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학교에서 별 생각 없이 지나치기 쉬운 일인데, 중학생이 이렇게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다니, 어떤 학생인지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런데 여성부에 알아보니 당사자가 지방에 있어 인터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TV뉴스 리포트 제작은 포기하고, 대신 단신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인터넷 기사로만 나갔는데, 뜻밖에도 상당한 반응이 있었다. 댓글로, 혹은 이메일로 온 그 반응들은 대부분 이런 내용이었다. “별 걸 갖고 다 난리야” “할일 없는 기자야 이게 기사가 되냐” “세금 걷어 이런 일 하냐  

 

당시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의 권고는 그야말로 권고였다. 상징적인 의미만 있지 전혀 구속력이 없어서 지키지 않더라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었다. 이 권고가 나온 지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번에 읽은 칼럼(2 12일 한겨레, ‘가나다순출석번호를 제안한다)을 보니 많은 학교들에서 남학생 출석번호는 1번부터, 여학생의 출석번호는 51번부터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내 딸이 다녔던 학교도 그랬던 것 같다.

 

이 칼럼을 쓴 서한솔 선생님은 남녀 순으로 출석번호를 일률적으로 매기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고, 성별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를테면 가나다순으로 출석번호를 매길 것을 제안한다. 그런데 이 칼럼의 댓글을 보니, 거의 20년쯤 전 내 기사에 달렸던 것보다는 호의적인 반응이 조금 많은 것 같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얘기가 대세다. ‘작작 좀 하라는 반응을 보니, ‘별 걸 갖고 난리야하던 2001년의 반응과 비슷해 보인다.

 

사실 출석번호가 남자 먼저, 여자 다음으로 돼 있는 게 당장 학생들의 생활에 실질적이고 엄청난 불편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참 사소한 일이다. 그렇지만 글쓴이는 정말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면 여학생을 1, 남학생을 51번부터 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텐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병원놀이를 하면 항상 의사는 남자, 간호사는 여자였다. 사소한 것이지만 어린 시절 내 인식에 미친 영향은 컸다. ‘의사는 남자라고 생각해왔는데, 내 친구의 어머니가 의사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사소한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20년 가까이 흘렀어도 바뀌지 않은 사소한 일 때문에 내가 썼던 사소한 단신을 기억해냈고, 이렇게 사소한 글을 쓰게 되었다. 사소한 일부터 바뀌어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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