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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사원으로 변모한 가톨릭 성당. 5월 초에 개막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단연 화제가 되었던 아이슬란드 관의 전시 주제였다. 아이슬란드 관 전시를 맡은 작가 크리스토프 뷔헬은 베니스 카나레지오 지역의 성당 건물(Santa Maria della Misericordia; ‘성모 마리아의 자비’라는 뜻)을 모스크로 변모시켰다.
베니스는
역사적으로 이슬람 세계와 많은 교역을 하면서 문화적 영향도 받았다. 베니스, 하면 떠오르는 그 유명한 산 마르코 대성당 역시 뾰족한 첨탑과 반원형 아치가 이슬람 건축 양식을 상기시킨다. 베니스는 몇 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이슬람 문화와 건축의 영향을 받은 도시이며,
현재 베니스 인구 가운데 이슬람 신자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베니스 시내에는
모스크가 없다. (유럽의 주요 도시들 가운데 모스크가 없는 곳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아이슬란드 관은 ‘베니스
최초의 모스크’가 되었다. 아이슬란드 관의 전시를 관람하는
행위는 곧 이 모스크에서 다른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된다. 바로크양식의 건물 벽은 아라비아 문자로 장식되었고, 바닥에는 기도를
위한 카페트가 이슬람의 성지 메카가 있는 방향으로 깔렸으며, 이슬람 사원 특유의 기도실이 마련되었다. 나는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 즈음에 베니스를 방문해 이 전시를 봤다. 만나는
사람마다 아이슬란드 관 전시가 재미있으니 놓치지 말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입소문을 많이 탔다.
극히 사실적으로 재현된 이슬람 사원을 둘러보면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느꼈던 점은 ‘이슬람 사원도 개신교의 교회, 천주교의 성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신발을 벗고 들어가 기도한다든지,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상이 없다든지, 메카를 가리키는 벽감인 ‘미흐랍’이 있다든지 하는 이슬람 사원만의 특징도 보였지만, 내게는 ‘이슬람 사원도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깨달음이 더 크게 다가왔다.
예배(혹은 기도) 시간을 알리는 시간표, 각종 종교 행사와 회합을 안내하는 포스터들이 벽에 붙어있고, 테이블 위에는 쿠란 경전을 여러 권 비치해 필요한 신도들이 가져가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어린이들을 위해 따로 조성된 공간에 어린이용 쿠란 교재와 장난감들이 눈에 띄어 웃음이 절로 나왔다. 교회로 치면 ‘유치부 예배’를 보는 곳이겠지. 깨알같이 ‘디테일’을 챙긴 이런 풍경들은 물론 신앙의 대상은 다르지만 다른 종교 시설에서도 비슷하게 보던 것이었다.
성당
건물과 모스크의 만남. 그러고 보니 나는 이와 비슷한 경우를 이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스페인의 코르도바 대성당에서였다. 중세 스페인을 통치한 이슬람 왕조가
건설한 당대 최대 규모의 이슬람 사원을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했다. 이슬람 사원의 기도실은 그대로 사용하면서, 중심부에만 왕의 예배실과 제단, 르네상스 양식의 돔 천정을 새로
지어 기존의 건물을 ‘재활용’했다. 이슬람 사원의 기도실 아치와 제단이 혼재된 공간은 서로 다른 건축 양식, 혹은
문화가 만나는 독특한 장소로 이 성당을 상징하는 장면이 되었다.
현장에서 만난 아이슬란드 관 관계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코르도바
성당 얘기를 했더니, 그는 터키의 성 소피아 사원은 가톨릭 성당이 이슬람 사원이 된 경우라고 얘기해줬다. 그러고 보니 오래 전 터키에 갔을 때 성 소피아 사원에 신발을 벗고 입장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이 건물은 6세기에 지어져 900년 동안 비잔틴 왕국의 중심 교회였고, 15세기부터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역사
속에서는 이런 일들도 있었지만, 정작 ‘베니스 비엔날레’라는, 편견과 경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여겨지는 예술의 장에서 펼쳐진
이 ‘전시’는 화제가 된 만큼 개막 전부터 논란도 심했다. 베니스 관리와 경찰들은 이 전시가 반 이슬람 주의자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폭력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고, 가톨릭 계 역시 이 성당이 40년 전에 문을 닫아 조명회사가 창고로
사용하고 있었는데도, 성당 건물을 다른 용도에 사용해선 안 된다며 반발했다.
몇 차례 좌초 위기를 넘기고 전시가 시작됐지만, 혹시 충돌이 빚어질까 봐 그랬는지 아이슬란드 관을 찾아가는 길목에는 다른 전시관과는 달리 안내 표지가 별로
없었고 건물 바깥에 홍보 배너 같은 것도 없었다. 베니스 경찰은 매주 금요일 이슬람 신도들이 이 곳에
모여서 기도하는 것을 두고 수용 인원을 초과해 규정을 어겼다며 계속 문제 삼았다. 지금까지 우려할 만한
큰 사고가 벌어진 적은 없지만, 경찰은 결국 지난달 말, 도시
치안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아이슬란드 관을 폐쇄하고 말았다.
일찌감치 문을
닫기는 했지만, 아이슬란드 관의 전시는 많은 이들의 고정 관념에 질문을 던지고 세계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바로 예술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나는 한국에서도 이런 전시가 열린다면 어떨지 궁금하다. 이를테면
명동성당을 이슬람 사원으로, 조계사를 개신교 교회로 변모시키는 전시 프로젝트를 누군가가 시도한다면? 베니스의 ‘관용’에 대한
시험대로 불렸던 아이슬란드 관 전시는, 큰 사고는 없었지만 예정됐던
7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한 달도 안돼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방송기자클럽연합회보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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