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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주최하는 수상 제도다. 매년 한국 현대미술을 선도할 역량 있는 작가들 4명(혹은 팀)을 후보로 선발해 전시를 열고 이 전시를 바탕으로 최종 1명(혹은 팀)을 ‘올해의 작가’로 선정한다. 그런데 내가 ‘올해의 작가상’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고 하면 이렇게 물어오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올해는 누가 후보야? 요즘 소설 나온 거 보니까 잘 모르는 젊은 작가들이 많더라고.”
“(머뭇거리며) 아, 그게, 그 작가가 아니라, 미술 쪽 얘긴데…….”
“그럼 화가라고 하지, 왜 헷갈리게 작가라고 해?”
예전에는 ‘미술’이라 하면 대개 회화를 가리켰다. 하지만 요즘 현대미술을 보면 회화 작업을 주로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회화를 주로 한 사람이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면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현대미술은 회화뿐 아니라 조각, 설치, 사진,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업을 포괄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이 중 한 작업만 하기보다는 여러 작업을 병행한다.
얼마 전 개막한 미술계 최대 규모의 국제 행사인 베니스 비엔날레에 다녀왔다. 여기서도 현대미술의 다양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준호 문경원 작가는 ‘축지법과 비행술’이라는 제목의 7채널 영상설치 작업으로 한국관 전시를 꾸몄다. 배우 임수정이 세계가 멸망하고 베니스가 물에 잠긴 후의 생존자를 연기한다. 한국관 건물과 똑같이 지은 세트에서 촬영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된 김아영 작가는 중동에 근로자로 파견됐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석유와 이를 둘러싼 국제외교를 다룬 작품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 기름을 드립니다, 셀3’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한 음악과 텍스트로 구성한 설치 작품이다. 지휘자와 보이스 퍼포머들이 참여한 퍼포먼스는 작가가 직접 쓴 대본에 따른 것이어서 줄거리 있는 음악극 같다는 느낌을 줬다.
남화연 작가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 시대의 튤립 투기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욕망의 식물학’이라는 영상 작품을 출품했다. 영상에서는 튤립들이 하늘하늘 바람에 흔들리는 꽃밭에 경매 시장의 시끌시끌한 소음이 배경으로 깔리고, 무용수들이 꽃 사이를 분주히 날아다니는 벌의 움직임을 따라 춤을 추기도 한다.
임흥순 작가는 봉제공장에서 일했던 어머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캄보디아, 베트남의 여성 노동자 현실을 그려낸 95분짜리 다큐멘터리 ‘위로공단’으로 한국 작가 역대 최고상인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2012년 ‘비념’으로 영화계에 데뷔했고, ‘위로 공단’은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위로 공단’은 사건 진행과 직업 관련 없는 퍼포먼스와 상징적인 장면이 삽입돼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점이 독특하다.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출품되었던 ‘위로 공단’이 상을 받으면서 베니스 영화제와 베니스 비엔날레를 합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현지에서 오갔다.
한국작가들의 출품작만 그런 것이 아니라, 베니스 비엔날레 전체가 이미 ‘현대미술은 경계가 없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문화부에 있을 때 주로 취재를 담당했던 공연계 역시 장르간 경계가 무너지고,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공연이 많아지는 게 큰 흐름이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여러 장르를 오가는 현대미술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문득 내가 지금 거대한 ‘오페라’를 보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오페라야말로 여러 장르의 예술이 만나는 ‘종합 예술’ 이니까.
그러고 보면 ‘올해의 작가상’이 ‘작가’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올해의 작가상은 현대미술의 다양한 분야를 모두 포괄하는 상이기 때문이다. 화가도, 조각가도, 설치미술가도, 사진 작가도, 퍼포먼스 예술가도, 영화감독도, 모두가 ‘작가’다. 영어로는 ‘Artist’다. 2015 올해의 작가상 후보 네 명-김기라, 나현, 오인환, 하태범-이 8월 초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를 연다. 이들의 작업 역시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 올해의 최종 수상자, 즉 ‘2015 올해의 작가’는 누가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방송기자클럽연합회보 5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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