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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람은 요즘 한국 공연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어린 시절 ‘내 이름 예솔이’로 사랑 받았던 소녀 이자람은 춘향가 최연소 완창기록을 보유한 국악도가 되었다.
이자람이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판소리로 만든 ‘사천가’와
‘억척가’는 수년째 공연될 때마다 매진을 기록하고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낸다. 국악 공연은 흔히 대중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자람의 공연은 다르다.
이자람이 지난해 주요섭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내놓은 ‘추물/살인’은 동아연극상에서 ‘새개념 연극상’을 비롯한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자람의 작업에 대한 연극계의 ‘승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판소리는 아주 오래된 장르이지만, 이자람이 판소리의 틀로 만들어낸 공연들은 연극의 지평을 넓히는 새로운 흐름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자람은 국제적으로도 ‘통하는’ 예술가다. ‘사천가’와 ‘억척가’는 유럽과 남미, 아시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몇 년째 공연되고 있다. 이자람의 공연이 끝나면 해외 언론들은 한국의 전통음악인 판소리를 설명하고,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이자람의 새로운 작업에 대해 상찬하는 리뷰를 쏟아낸다. 이자람이 ‘백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 마르케스의 소설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에서
모티브를 얻어 지난해 내놓은 신작은 이미 일본과 프랑스 등의 초청 공연 일정이 잡혔다.
그러니 이자람은 전통의 ‘대중화’와
‘세계화’의 대표 주자로 자주 언급된다. 이쯤 되면 이런 명제가 떠오를 법도 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그러나 이자람의 생각은 달랐다. 나는 최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이자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한 시간 넘게 이어진 이 날의 대화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전 이렇게 말해요.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한국적인 것은 우리 모두
잃어버렸다”라고. 한국적인 게 뭐냐고 사람들 붙잡고 물어보면 답이 다 다를 거예요.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동시대적인 것이고, 가장 동시대적인 것은 그 사회를 담고 있는 ‘나’고, 그게 외국에서도 통하더라, 이게 제가 생각하는 세계적인 것이에요.”
이자람은 ‘세계화’와 ‘대중화’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면, 오히려 거기서 멀어진다고 했다.
“’세계화’라는 단어에 꽂혀서 ‘세계화’를
향해 달려가면 모든 걸 잃어요. 제가 전통의 대중화와 세계화 사례로 언급되지만, 제가 대중화와 세계화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느냐? 전혀 아니에요. 0퍼센트. 그냥 ‘나’답게 하려고, 이 안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답을 찾으려고 했더니, 운이 좋고 시대에 잘 맞아서 나중에 대중화가 되고 세계화가 되더라, 그게
제 생각이에요.”
이자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나는 게 있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한창 뜨던 시기, 나는 “강남스타일의 성공요인을 분석해서 우리 문화콘텐츠의 ‘세계화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얘기를 참 많이 들었다. 얼핏 지당한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만약 강남스타일의 성공요인을 A부터 Z까지 철저히 분석해서 이를 충실히 반영한 콘텐츠를 새로 만들어낸다면 이 역시 성공할 수 있을까?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것이었고, 그게 당시 상황과 잘 맞아떨어져서 ‘세계화’에 성공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세계화’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낸 콘텐츠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물론 다른 콘텐츠의 성공요인을 분석해 참고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특정 콘텐츠의 성공요인이 다른 콘텐츠에서도 똑같이 성공요인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문화 콘텐츠 생산자들은 끊임없이 비슷한 오류를 저지른다. 내가 다니는 SBS에서 방영하고 있는 프로그램 중에서도 그런 예를 종종 본다. 이전에 성공했던(시청률이 높았던) 콘텐츠의 스타일을 답습하고, 성공했던 프로그램에 나왔던 출연자를 다시 출연시킨다. 과거 성공작의 공식을 따라, 대중이 좋아할 것 같은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전 프로그램의 성공 공식은 다른 작품에선 실패 공식이 되기도 한다. ‘안전한’ 선택은 본전도 못 건지는 참담한 실패로 끝나기 일쑤다. 다행히 본전을 건지기도 하지만, 그러면 이전의 성공을 넘어서는 새로운 성공은 기대하기 어렵다.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동시대적인 것이고, 가장 동시대적인 것은 그 사회를 담고 있는 ‘나’라는 이자람의 이야기는, ‘내 중심을 세우는 게 먼저다’라는 얘기로 들렸다. ‘나’는 다른 사람들, ‘대중’과 고립돼 혼자 살아가는 ‘나’가 아니다. ‘나’는 내가 사는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으면서 형성된 것이며, 나 역시 ‘대중’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대중을 의식하며 맞추려고 애쓰는 것보다, ‘나다운 것’을 추구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 잘 할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게, 역설적으로 대중과 더 가까워지는 방도일 수 있겠다.
지난해 통영에서만 공연됐던 이자람의 판소리 마르케스 신작은 오는 5월 서울에서 무대에 오른다고 한다. 나는 이미 ‘사천가’와 ‘억척가’를 보고 이자람의 팬이 된 지 오래다. ‘대중화’와 ‘세계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이자람답게’ 만든 작품의 힘,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다. 놓치지 말아야겠다.
*방송기자클럽 회보 2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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