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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 기부’는 해외 유명
극장들이 애용하는 공연장 후원 방식이다. 공연장 좌석에 기부자의 이름을 새긴 명판을 부착한다. 국내에서는 예술의전당이 지난 2008년 오페라극장에 이어, 지난 8월부터 콘서트홀 객석
300석에 대한 기부를 모집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500만원을 기부하고 ‘객석 기부
1호’가 되었다. 콘서트홀 1층 C블록 2열 1번 자리다.
나는 김선욱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객석 기부 1호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놀라지 않았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김선욱에게 얼마나 특별한 장소인지 예전에도 여러 차례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 밥 먹듯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드나들며 수많은 연주를 보고 꿈을 키웠다고 했다. 객석 기부 이야기를 자세히 듣기 위해 이뤄진 인터뷰에서도 김선욱은 콘서트홀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지금도 제일 떨리는 무대 중 하나입니다. 제 음악인생의 뿌리이기도 하고요. 어렸을 때부터 그 무대에 선 제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지금의 저를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음악인생의 뿌리’요, ‘현재의 나를 만든 원동력’이라니. 이런 곳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좌석이 생긴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김선욱은 객석 기부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예술의전당에서 제안을 해 와서 첫 번째로 자신의 이름을 새길 수 있게 된 게 ‘영광’이라고 했다.
“예술의전당은 따뜻하고 열정적인 관객들이 있어 많은 해외 음악가들도 감탄하죠. 젊은 관객들이 많고, 공연이 좋으면 ‘홀이 터져나갈 정도로’ 환호합니다. 한국을 방문한 음악가들에게 물어보면 그 관객들 때문에 한국을 다시 가고 싶어합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뿌듯해져요. 앞으로 꾸준한 관리로 더 훌륭한 홀이 되기를, 애호가로서 진심으로 바랍니다.”
김선욱은 2006년 리즈 콩쿠르 우승 이후 영국 아스코나스 홀트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하고 런던으로 이주해, 런던을 중심으로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콩쿠르 우승 후 3년간이 제일 힘든 기간’이었다고 했다. 또 다른 우승자가 나오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연주 기회를 다시 못 얻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는 ‘이제 제일 힘든 기간은 지나갔고, 7년이 지난 지금도 잘 버티고 있는 건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이 인터뷰가 이뤄진 시점은 그가 영국 최대의 음악축제 프롬스에 참가하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독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였다.
“항상 새로운 곳에서 연주하는 건 즐거워요. 프롬스가 열리는 런던 로열 앨버트홀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콜론 극장도 멋진 공연장입니다. 두 달 넘게 굵직한 공연이 매일 열리는 프롬스는 정말 합니다. 스케일도 엄청나지만, 더 중요한 건 거의 모든 공연의 객석이 꽉 찬다는 겁니다. 연주자나 오케스트라의 명성보다는 관객들이 순전히 클래식 음악을 즐긴다는 게 제일 중요하죠. 콜론 극장은 정말 작은 소리도 객석 끝까지 전달되더군요. 정말 황홀했습니다”.
김선욱은 지난해부터 2년 여정으로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를 진행하고
있다. 그의 ‘베토벤 대장정’은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는 평소에도 베토벤을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로 꼽아온 터이다. 베토벤 소나타 32곡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있다. 그의 나이 20대 중반, 과연 지금 이 시기에 베토벤 소나타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했던 경험이 어떤 거름이 되어 몇 십 년 후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김선욱은 베토벤 대장정을 진행함에 있어서 이게 가장 중요하고, 자신도 궁금한 점이라고 했다.
우연이겠지만 김선욱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는 그가 지난해 초 결혼으로 ‘품절남’이 된 후 시작되었다. 결혼 이후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물었다. 우선, 혼자 다니던 연주 여행을 둘이 다니게 되었다. ‘예전보다 더 부지런해졌고 책임감도 많이 느낀다’고 했다.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게 행복하다면서.
다시 객석 기부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김선욱이 기부하는 객석에는 그의 이름과 함께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객석에서 또 다른 꿈을 꾸며’라는 문구가 새겨진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이룬 그에게 ‘또 다른 꿈’은 무엇일까. 김선욱은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과거 인터뷰에서 지휘자로서의 꿈을 내비친 적도 있다.
“학교 다니는 3년 동안 피아노와 지휘 공부를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졸업하고 나서 제일 기뻤던 게 피아노 연습할 시간이 많아졌다는 거죠. 그리고 지금 피아니스트로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시기에 더욱 피아노에 열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휘자의 꿈은 잠시 접어두었죠. 하지만 때가 되면 시작할 겁니다. 저에게 ‘계획’은 계속 연주를 하는 것이고, ‘포부’는 그 연주를 잘 하는 것입니다. 너무 진부하지만 어쩔 수 없는 진리입니다.”
연주를 더 잘 하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 그리고 때가 되면 지휘를 시작하는 것. 현재 김선욱이 품고 있는 꿈이다. 하지만 김선욱이 이야기한 ‘또 다른 꿈’은 꼭 자신의 꿈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었나 보다. 객석 기부 홍보대사이기도 한 김선욱에게, 지인에게 객석 기부를 권해야 한다면 어떻게 설득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 걸 보면.
“어느 시계 광고에 이런 문구가 있지요. 그것을 정말 소유하는 게 아니라 대를 위해 물려주는 것이라고. 객석도
마찬가집니다.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꿈, 미래를
위한 거죠.”
김선욱이 고른 자리는 평소 피아니스트의 손과 얼굴이 잘 보여 그가 좋아했던 자리라고 했다. 이제
누군가가 김선욱의 이름을 새긴 그 자리에 앉아서, 혹은 그 자리에 새겨진 김선욱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서, 또 다른 꿈을 꾸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제 2, 제 3의 김선욱을,
새로운 음악가들을 키워내고, 이들의 연주를 사랑하는 관객들을 품어내는 장소가 될 것이다.
*SBS 뉴스웹사이트와 예술의전당 월간지 10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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