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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내한공연 '지젤'이 오늘(18일) 개막합니다. 40만원짜리 P석을 책정해 비판받은 바 있고 마케팅 방식도 그다지 세련되지
않아 여러가지로 말이 많았던 공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공연 자체만 보면 관심이 갑니다. 최근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서희가 주역을 맡는 것도
화제지만, 그 유명한 줄리 켄트가 개막 공연을 맡은 것도 궁금합니다. 줄리 켄트를 이메일로 인터뷰하고 예술의전당 월간지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이하 ABT) 내한공연 캐스팅에서 ‘줄리 켄트’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눈이 번쩍 뜨였다. 나에게 줄리 켄트는 허버트 로스 감독의 1986년작 영화 'Dancers'에서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무용수이다(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지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다). 줄리 켄트는 이 영화에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상대역으로 출연해, 청순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목 받았다.
당시 ABT 신입 단원이었던 줄리 켄트는 1993년 이후 ABT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줄리 켄트는 다국적 스타가 많은 ABT에서 몇 안 되는 ‘미국이 낳은’ 스타 무용수이다. 2000년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을 받으면서 국제적
명성을 더욱 확고히 했다. 외모도 그렇지만 춤 역시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줄리 켄트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네
번째다. 1996년에는 ABT 내한공연으로, 1997년에는 타계한 한국 발레계 스승 로이 토비아스의 칠순 기념 갈라 공연으로, 2000년에는
월드 발레스타 갈라 공연으로 한국 관객들을 만났다. (ABT는 2008년에도 서울에서 공연했지만, 이 공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나는
2000년에도 줄리 켄트를 인터뷰했던 경험이 있다. 12년만의 만남을 앞두고 이 메일로 인터뷰를 청했다.
“한국은 올 때마다 굉장히
환영 받는다는 느낌이었죠. 이번 공연을 고대하고 있어요. 전 한국 공연에서 얻은 추억도 많습니다. 저는 1996년 9월에 결혼했는데(줄리 켄트의
남편은 ABT 부예술감독인 빅터 바비다), 그 직전에 첫 한국 공연이 열렸어요. 아주 특별한 공연이 됐죠. 또 1997년의 로이 토비아스 칠순
기념 갈라 공연 역시 기억에 남아요. 로이 토비아스는 한국 발레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 분이잖아요. 정말 재능 있고 친절하고 너그러운
분이셨죠.”
낭만발레의 대표작 '지젤'은 1996년 ABT 내한공연에서도 선보였고, 영화 'Dancers'의 주된 모티브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줄리 켄트는 '지젤'을 ‘영원한 고전’이라고 했다. 사랑과 배신, 용서라는 '지젤'의 테마가 어느 문화권에서나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ABT의 '지젤'은 등장인물간의 관계와 심리를 그려내는 데 중점을 둔다. 1막의 마을 장면은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이고, 2막은 윌리들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포착해 낸다.
이번 '지젤'에서 줄리 켄트의 파트너는 역시 ABT 수석무용수인 마르셀로 고메즈다. 줄리
켄트와는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온 사이다. 줄리 켄트는 고메즈와 함께 춤추는 게 행운이라고 했다. 고메즈는 여성 무용수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돋보이게 해줘 많은 발레리나들이 함께 춤추고 싶어하는 파트너로 꼽힌다.
“고메즈와는 어떤 작품을 해도 좋지만, 특히 '지젤'은 더욱
그래요. '지젤'에서 그는 무용수이자 예술가로서 아주 특별한 재능을 보여주죠. 게다가 비길 데 없이 훌륭한 파트너예요. 아마 2막은 정말
환상적일 거예요!”
이번 '지젤' 공연에선 줄리 켄트와 함께 팔로마 헤레라, 시오마라 레이예스, 유리코 카지야, 서희가 주역으로
캐스팅됐다. 특히 한국인 발레리나 서희는 지난해 ABT '지젤' 주역으로 처음 데뷔해 주목 받고 있는 신예로, 최근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줄리
켄트는 까마득한 후배인 서희가 무용수이자 예술가로서 발전해가는 것을 계속 지켜보고 싶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희는 아름다움과 정교한 선,
뛰어난 테크닉 등 많은 자질을 갖추고 있으며, ABT의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발레리나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줄리 켄트는
7월 14일에 ABT 입단 26주년을 맞았다. 이번 시즌에도 그녀는 활발하게 무대에 서고 있다. 6월에 '로미오와 줄리엣' '꿈' '백조의
호수' 등 ABT 시즌 공연 세 작품에 출연했고, 내한 직전인 7월 12일에는 ABT 갈라 공연에도 참여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계속해서
ABT와 다른 발레단의 공연에서 춤을 추는 한편, 후배들을 가르치고 자신의 삶과 발레에 대한 책도 쓸 계획이라고 한다.
줄리
켄트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임신 기간 중에도 계속 무대에 섰을 정도로 강인한 모습을 보여줬다. 자신에게는 가족이 우선이라는 그녀는 이번
한국 방문도 얼마 전 세 살이 된 딸 조세핀과 동행할 예정이라 했다. 줄리 켄트는 1969년생이니 40대 중반에 든 접어든 나이다. 발레는
체력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장르인데, 젊은 시절에 비해 어려움은 없을까.
“어떤 분야든 한 직업을 오랜 시간 유지한다는
것은 엄청난 헌신을 필요로 합니다. 게다가 제겐 아이도 둘 있어요. 쉽지는 않죠. 하지만 제 아이들이 주는 기쁨은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에너지를
선사해요. 또 제가 쌓은 경험은 세월이 앗아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저한테 줬지요.”
줄리 켄트는 발레에서든, 인생에서든,
성공하려면 재능뿐 아니라 다른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고 했다. 줄리 켄트의 ‘나의 성공의 비결’은
이랬다.
“자신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알아야 해요. 실수로부터 배우고, 남의 조언을 잘 들어야 하죠. 목표를 향해 자신을 몰아붙일
줄도 알아야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몰아붙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뚜렷한 주관을 발전시키고, 내 정신과 영혼의 폭을 넓혀야 해요. 모든 게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지요. 하지만 꾸준히 노력한다면 큰 보람으로 돌아옵니다.”
경험은 세월이 앗아가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선사한다! 나는 최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바흐 무반주 연주회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세월은 그녀의 손가락을 무디게 했을지 몰라도, 대신
풍성한 울림과 음악적 깊이를 가져다 줬다. 줄리 켄트 역시 넘치는 에너지와 정교한 테크닉은 예전 같지 않을지 몰라도, 성숙한 표현력은 더욱
깊어졌을 터이다. 그녀는 인터뷰 내내 ‘무용수이자 예술가(dancer and artist)’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무용수이자 예술가인 줄리
켄트의 '지젤'을 무대에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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