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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성악 부문에서 한국인 소프라노 황수미 씨<위 사진>가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2011년에는 홍혜란 씨가 우승했으니 한국인 소프라노가 두 차례 연속으로 우승한 것이다.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성악 경연이 번갈아 열리고, 작곡 부문도 1~2년에 한번씩 시상하는데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인 참가자들이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고 있다.  

나는 올해 콩쿠르 소식을 듣자마자 티에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티에리 로로는 벨기에 공영방송 RTBF의 프로듀서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실황 중계와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해왔다. 나는 티에리를 2011년에 처음 만났다. 그가 한국 클래식의 수수께끼라는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서울에 왔을 때였다.   

“20년 전만 해도 한국인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같은 유명 국제 콩쿠르 결선에 오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1995년 이후 4백 명 넘는 한국인이 결선에 진출했고, 이 중 70명은 우승했다. 도대체 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의 다큐멘터리는 이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한국과 독일 뮌헨에서 한국인 음악도와 어머니, 선생님들을 취재하고, 성공한 한국인 음악가들을 만나며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찾아간다. 우선 한국의 높은 교육열을 빼놓을 수 없다. 또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 같은 교육기관이 우수한 학생들을 양성해내는 시스템이 정착되었다. 이렇게 국내에서 단련된 학생들은 해외 유학에서 음악적 표현과 해석력을 갈고 닦으며 예술가로서 자립하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같은 유명 콩쿠르를 통해 두각을 나타낸다.   

이 해답은 사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지만, 이방인의 눈으로 관찰하고 찾아낸 것이기에 의미가 있었다. 처음에 나는 한국 클래식의 수수께끼해답이 무엇일까 궁금해 취재를 시작했지만, 티에리가 한국에 올 때마다 만나 인터뷰할수록 다큐멘터리 자체뿐 아니라 감독에 대해서도 흥미를 느꼈다.  

티에리 역시 음악을 전공한 음악도 출신이며, 오랜 세월 음악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유럽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음악가들과 친분을 쌓았다. 항상 음악을 접하고, 음악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을 하고 있어 행복하다 했다. 특히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만난 한국인 음악가들 덕분에 한국을 좋아하게 되었고 한국어도 배우기 시작했단다. 소프라노 홍혜란, 임선혜 씨를 비롯한 한국인 음악가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의 얼굴은 환해졌고,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일 때문에 만났지만 어느새 나는 티에리와 함께 음악 얘기를 하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티에리와 나. 2012년 11월 예술의전당 앞에서>  

한동안 연락이 뜸했었지만 내가 올해 콩쿠르 소식을 듣고 티에리를 떠올렸듯, 그도 내 생각을 했나 보다. 수상자가 발표된 다음날, 흥분과 감격이 담긴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최종 결선 진출자의 3분의 1이 한국인이었다면서 감탄하고, 우승자 황수미 씨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소프라노 박혜상 씨가 5위를 차지했고, 수상은 못했지만 테너 김승직 씨 바리톤 유한승 씨도 12명이 올라온 최종 결선에 들었다.) 그는 콩쿠르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이들과 친해졌다고 했다. 이메일을 받고 나서 그와 인터넷 채팅을 했다. 티에리는 수상자 콘서트 방송 준비로 바쁘다면서도 마치 매니저인 듯황수미 씨 얘기에 여념이 없었다.  

 벌써 벨기에에서만 20차례 공연이 잡혔어! 대단하지! 수미는 서울대 졸업하고 독일 뮌헨에서 공부하고 콩쿠르에서 우승했어. 바로 내 영화에서 보여준 코스야! 수미 인터뷰하고 싶으면 알려줘. 촬영하느라 매일 만나니까 바로 연결해 줄 수 있어. , 정말 수미는 굉장해. 더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야 한다니까!”

내가 요즘은 문화부에서 일하고 있지 않고, 더 이상 SBS뉴스 기사를 쓰지 않는다고 알려주자 그는 너무나 아쉬워했다.

? 어쩌다 그렇게 됐어? 그럼 무슨 일 해?”

. 얼마 전에 인사이동이 있었어. 매니지먼트 하는 부서에서 일해. 승진은 했는데 더 이상 취재를 못하니까 그건 너무 아쉬워

그렇군. 승진이 안 좋을 때도 있다니까. 난 승진을 안 해서 행복해. 하하. 난 내 일을 사랑해! 이렇게 쭉 음악가들 만나 촬영하고 영화 만들면서 살 거야.”

나는 티에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는 아니더라도 꼭 그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티에리는 오는 8월 한국을 방문해 제천 국제 음악영화제에 참가한다. 이미 하모니카 거장 투츠 틸레망을 다룬 영화, 한국 클래식의 수수께끼를 다룬 영화로 이 영화제에 초청받은 적이 있으니 이번이 세 번째다. 새 영화는 전세계에서 모여든 학생들이 함께 음악을 연주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렸다고 한다. 티에리가 기다려진다. 음악과 관련된 일을 평생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나도 함께 행복해질 것 같다.

<올해 콩쿠르 5위를 차지한 한국인 소프라노 박혜상 씨와 인터뷰 중인 티에리. 그는 박혜상 씨에 대해서도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소프라노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이 글은 한국방송기자클럽회보 6월호에 실렸습니다. 콩쿠르 사진은 티에리 로로 감독이 제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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