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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예전보다는 노벨문학상의 위력이나 권위가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노벨문학상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언제 첫 한국인 수상자가 나오나를 고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가장 수상이 유력한 한국 작가로는  고은 시인이 꼽히고 있지요.

노벨문학상은 스웨덴 한림원이 수상자를 선정해 관례적으로 매년 10월 둘째 주 목요일에 수상자를 발표합니다. 올해는 10 10일이네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열리는 시기와 겹칩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전으로 전세계 출판업계 관계자와 작가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유럽 한복판에서 대규모 도서전이 열려서 책과 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돼 있을 때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함께 발표되는 셈입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하고 있다가 노벨문학상 수상 사실을 알게 되는 작가도 종종 있습니다.  

고은 시인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 건 2005년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해 한국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이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이 되는 것과 노벨문학상 수상자 배출 간에 상관 관계가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한국 문학을 조명하는 행사들이 많이 열렸고,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고은 시인 역시 시 낭송회나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많이 초청받았습니다.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된 건 이런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었을 겁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시각은 현지 시각으로 오후 1, 한국에서는 밤 8시쯤에 해당합니다. 8시뉴스를 진행하고 있을 때 수상자가 발표되기 때문에, 발표를 보고 나서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 8시뉴스에 소화하기 어렵습니다. 첫 한국인 수상자가 나온다면 기사 한 건에 그칠 수 없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러니 미리 한국인 수상자가 나올 경우에 대비해관련 기사를 여러 건 써놓아야 했습니다. 유력 후보인 고은 시인의 자택 앞에 중계차도 대기시켰지요.  

이렇게 첫 한국인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2005년 노벨문학상은 영국의 극작가 해롤드 핀터에게 돌아갔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고은 시인 수상 실패라는 제목의 기사를 써서 빈축을 사기도 했지요. 그런데 2005년에 이렇게 시작된 노벨문학상 시즌이 언론사에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리 한국인 수상자가 나올 경우에 대비해 기사를 써놓고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죠.

2013
,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누가 될까요? 관련 외신 보도 중에 눈에 띄는 건 영국의 온라인 도박 사이트 래드브록스를 언급한 기삽니다. 어떻게 도박 사이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맞출까 싶은데요, 래드브록스는 실제로 꽤 높은 적중률을 자랑합니다. 2006년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수상을 정확히 맞췄고, 지난해 상을 받은 모옌과 지지난해 수상자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수상 가능성을 2위에 올렸던 실적이 있습니다. 10 8일 밤 현재, 이 사이트에서 고은 시인의 수상 가능성은 7위입니다. 10 1의 배당률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5 2 1, 캐나다의 소설가 앨리스 먼로가 4 1 2위에 올라있습니다.

오늘자 서울신문에는 래드브록스가 어떻게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예측하는지에 관한 기사가 실려 눈길을 끌었습니다. 래드브록스 대변인을 인터뷰한 내용인데, 래드브록스는 1년 내내 노벨문학상 후보를 조사한다고 하네요. 매년 여름 전문가 그룹이 전세계 서평과 블로그, 트위터 등을 검색해 후보 목록을 작성하고, 구체적인 배당률은 전문가 한 명이 정한다고 합니다.

래드브록스가 이렇게 최초 배당률을 정한 뒤에는, 도박사들의 베팅에 따라서 배당률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도박사들도 나름대로 정보를 수집해 가능성 있어 보이는 후보에게 베팅하고, 이에 따라 순위도 달라진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고은 시인이 최초의 4위에서 7위로 떨어진 것은 도박사들이 처음 래드브록스의 전문가들이 예측한 것보다 고은 시인의 수상 가능성을 낮게 본다는 뜻이 됩니다.

전문 문학 사이트도 아니고 도박 사이트인 래드브록스의 배당률이 매년 노벨문학상 관련 보도에서 거론되는 것은, 그만큼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뽑는 과정이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노벨문학상 후보 명단조차도 비공개가 원칙입니다. 이렇게 워낙 정보가 없으니까 도박사이트의 배당률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예측하는 주요 소스가 되는 것이죠. (거꾸로 생각하면 이렇게 도박사이트에서 베팅까지 할 정도니까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측에서는 더더욱 보안을 강조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실제로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직전에 래드브록스에서 배당률이 뚝 떨어지는 일이 있어서 스웨덴 검찰이 사전 유출 여부를 조사한다는 보도가 나왔던 적도 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종신 회원 18명으로 구성됩니다(현재는 한 명이 공석인 상태입니다만). 이 회원들 가운데 4-5명으로 구성된 노벨위원회가 매년 초 전세계에서 약 350건의 추천서를 받습니다. 추천은 대학의 문학 혹은 언어학 교수,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웨덴 한림원 회원, 각국의 펜클럽이나 문인협회 등 문학단체장이 할 수 있습니다. ‘저한테 상을 주십시오하고 자천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추천 후보가 겹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보통 200명 정도가 후보로 추천됩니다.

노벨위원회는 단계적 심사를 거쳐 5월말까지 후보를 5명 정도로 압축하고, 이 후보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한림원 회원들은 후보들의 작품을 여름 휴가 동안 읽고 나서 9월에 모여 보고서를 검토하고 토론을 벌입니다. 최종 후보 명단이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암호를 사용하는 등 철통 보안을 강조합니다. 2005년 수상자인 해롤드 핀터는 해리 포터라는 암호로 불렸다고 합니다. 최종 수상자는 한림원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데, 절반 이상 득표해야 합니다.

아무리 비밀 심사라지만, 종신 임기인 한림원 회원들 명단은 공개돼 있으니 이들의 배경이나 성향, 발언 등으로 단서를 얻는 게 아주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도 같습니다. 한림원 회원 가운데 중국문학 전문가가 있어서 프랑스 국적의 중국 작가 가오싱젠이나 지난해 모옌의 수상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 심사 과정에 번역자들이 관여해 간접적으로 알려지는 경우도 있겠지요. 스웨덴 현지 출판계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런 단서들을 조합해 수상자를 예측하는 건 내부 사정에 밝은 사람이 아니면 쉽지 않습니다. 스웨덴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겠지요.

이렇게 노벨문학상 심사 진행 과정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는데, 왜 매년 고은 시인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지금 밤샘 야근을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요, 이제부터는 마감 뉴스 준비를 해야 하니, 다음 글에서 이야기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SBS 뉴스 웹사이트에 취재파일로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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