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편에서 이어집니다. 

더 중요한 건 공연 자체의 매력도입니다. 아무리 영상 제작 기술이 뛰어나다 해도 공연 자체가 매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과연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공연을 영상으로라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까요? 메트는 메트라서, 베를린 필은 베를린 필이라서, 현장에 못 가보니까 영상으로라도 보고 싶어하는 거 아닌가요? 오페라 평론가 박종호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메트라든지, 베를린 필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사람들이 영상으로 찾아보는 큰 이유는, 물리적으로 너무 멀어서 못 가보기 때문이지요. 한국처럼 교통이 발달되고 전국이 1일 생활권인 곳에서, 영상을 만들어서 상영한다고 해도 과연 몇 명이나 올까요? 영상 컨텐츠 만드는 게 세계적인 트렌드라고는 하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빈 국립 오페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이렇게 세계적으로 정말 최고 수준의 스타들이 나오는 공연들입니다. 예술의전당이 지금 자신들 수준이 무슨 유럽의 대단한 극장 정도 되는 걸로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특히 미국은 땅덩어리가 너무 커서 공연장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공연을 방송으로 보여주기로 한 것이 1984년부터니까, 30년 이상의 촬영과 음향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예술의전당이 테스트 기간도 없고, 공연장 음향 자체도 좋지 않고, 세밀한 기술 검토도 없이 하겠다는 말을 먼저 터뜨린 건 무모한 경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짐작하게 해요.

솔직히 지금도 예술의전당 객석조차도 다 못 채우는 공연이 많은데 이런 걸 영상으로 만든다고 해서 많이 보러 오겠냐는 말이죠. 오히려 영상 만들어서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걱정돼요. 더구나 이 사업으로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오산이죠. 우리나라에서 음반이 얼마나 팔리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료 사이트에 들어가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나온 말 아닐까요? 예산이 있다면 공연 자체의 수준을 높이고 공연장 자체 음향을 개선하는 게 급선무죠.”

신랄한 지적이지만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예술의전당 고학찬 사장이 취임 후 발표한 이런저런 계획들을 보니 예술의전당의 본질이 돼야 할 공연 자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이벤트성에 그치거나, 현실성이 떨어졌습니다. 저는 기자회견 내내 답답했습니다. 공연장을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얘기를 별로 듣지 못했으니까요. 역점 사업이라고 발표한 영상 컨텐츠 사업은 TV 프로듀서 출신인 고학찬 사장이 자신의 특장점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무리하게 추진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습니다.

예술의전당은 흔히 국내 최고의 공연장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정말 예술의전당이 국내 문화예술계를 선도하는 최고의 공연장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수익 따져야 하는 민간에서는 시도하기 힘든 공연들이 예술의전당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게 바로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공연장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요? 흥미로운 공연들이 만들어지던 시절의 활기를 저는 요즘 예술의전당에서 느끼지 못합니다.

물론 지금도 예술의전당은 외형적으로는 번성한 듯합니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고 싶어하는 단체들은 많아 예술의전당은 자연스럽게 공연계 의 위치에 있습니다. 힘든 자체 제작은 줄이고 손쉬운 대관 장사에 주력하고, 부가적인 사업이나 이벤트에 더 힘을 쏟고 있습니다. 번듯한 레스토랑과 카페가 많아 관객이 아니더라도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붐빕니다. 오죽하면 예술의전당이 아니라 식음료의 전당이라는 말까지 나온 적이 있습니다. , 이벤트도 좋고 사업도 좋고 다 좋습니다. 하지만 예술의전당이 원래 뭐 하는 곳인지, 그 정체성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영상 컨텐츠 사업이 예술의전당이 지금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일까요? 영상 컨텐츠 만드는 일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 영상 컨텐츠의 재료가 되는 공연 자체에 대한 고민이 더 앞서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예술의전당 고학찬 사장이 저작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구체적인 방안도 마련하지 않은 채 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한 것도 예술의전당이라는 이름에만 취해 공연 자체에 대한 고민은 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인해 보니, 예술의전당은 처음 계획을 대폭 축소해 토요 콘서트(이건 예술의전당 기획 공연입니다)와 국립발레단 공연 한 편, 국립현대무용단 공연 한 편 그리고 전시회 시크릿 뮤지엄을 영상 컨텐츠로 만들기로 하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자체 단원이 없고 해외 스탭, 해외 출연자와 작업이 많은 국립 오페라단의 공연은 저작권 문제 해결을 위해 추가로 돈이 많이 들뿐만 아니라 굉장히 번거로운 교섭 과정이 필요하니, 국립오페라단을 제외한 다른 단체들의 공연이 대상으로 선정된 듯합니다.

처음 계획 발표했을 때보다는 그래도 비교적 현실성 있는 쪽으로 수정된 셈입니다. 예산은 후원을 받아 일부 마련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과연 백령도 초등학생이 예술의전당 공연을 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꼭 백령도가 아니더라도 지방에 있는 초등학생이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공연 실황을 영상으로 보는 일이 가능하게 될 것 같기는 합니다. 저는 이왕 이렇게 시작한 일이니 잘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저는 예술의전당이 이 사업에만 매달리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것 말고도 중요한 일이 많으니까요.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