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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이어집니다.>
취재하면서 만난
전문가들 얘기에 따르면, 해외 주요극장들은 무대세트와 의상, 소품
보관소를 중요 기반시설로 갖추고 있습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은 콘테이너 하나에 한 작품씩, 수백 편의 무대세트를 보관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자주 공연하는 작품은
뉴욕에서 가까운 뉴저지 보관소에 배치하고, 자주 공연하지 않는 작품은 좀 떨어진 지방에 보관해, 언제든 필요할 때면 꺼내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답니다.
일본 신 국립극장은 무대미술 센터를 지바현에 갖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도쿄 신주쿠에
있는 신 국립극장의 발레, 오페라 등의 무대 장치와 의상을 보수 보관하고 있는데요, 전자동 격납 시스템을 갖춘 보관고, 무대세트를 보수하는 미술 공작관, 무대미술 자료를 보존 전시하는 자료관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또
국립극장 주기홍 무대미술팀장은 10년 전 터키 앙카라를 방문했다가 국립 무대제작소와 보관소 시설의 수준과
규모에 놀라고 왔던 기억이 있다고 합니다.
해외 극장의 보관소는
단순한 창고에 그치지 않습니다. 무대 디자이너 임일진 씨는 적절한 보관 환경과 전문 인력의 관리까지
갖춰져야 제대로 그 기능을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여주에 있는 무대미술센터는 그저 벽만 둘러친 단순한 창고 건물에 불과합니다.
온도와 습도 조절장치가 전혀 없어 요즘 같은 여름철엔 말 그대로 찜통이, 겨울철에는 시베리아
벌판이 됩니다. 극심한 온도차, 습도차는 무대세트와 의상
보관에 치명적입니다.
저는 이번 취재를 하면서 장마철 중간 비가 잠깐 그친 날 무대미술센터를 찾아갔는데, 국립오페라단이
무대세트뿐 아니라 무대의상 7,500여 벌을 보관하고 있는 이 곳 창고의 습도는 무려 94퍼센트나 됐습니다. 곳곳에 ‘물먹는
하마’ 제습제가 놓여 있었지만, 이걸로 되겠습니까. 국립오페라단은 정기적으로 이 창고를 정리하고 보관 물품을 수선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제가 찾아간 날도 직원들이 선풍기 몇 대와 새로 교체할 ‘물먹는
하마’ 몇 박스를 가져가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직원들은 국립오페라단의 무대의상이라면 공연예술박물관의 소장품이 될 만한 귀중한 자산인데,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 보관되고 있다는 게 아쉽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창고가 부족한 것도 문제요, 적절한 보관 환경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도 문젭니다.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적어도 국립단체들이라면 제대로 된 창고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무대세트가 재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건 자원 낭비일 뿐 아니라, 공연 제작비를 높여 결국은 관객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무조건 창고를 늘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모든 무대세트를 다 보관하는 건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세트를 재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멀쩡한 무대세트가 버려지는 건 그 공연이 다시 공연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기도 하죠. 신작만 선호하는 풍토 속에 과거 작품을 다시 꺼내 공연하는 것을 꺼리는 겁니다. 하지만 예전 작품 중에서도 좋은 작품은 다시 공연하는 레퍼토리 시스템이 정착된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해외에서는 신작과
기존 레퍼토리를 적절히 배합해 시즌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요, 한국도 요즘은 상황이
변화하고 있어서, 국립오페라단은 지난해 공연한 ‘카르멘’ 프로덕션을 올해 다시 무대에 올릴 예정이고, 국립극장은 지난해부터
‘국립 레퍼토리 시즌제’를 운영하며 과거 호평 받은 수작들은
고정 레퍼토리로 삼아 다시 공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재공연을 올리는 것 외에도, 무대세트와 소품을 다른 단체나 극장에 대여해 활용도를 높이는 방법이 있겠지요.
저는 이번에 국립 예술단체의 창고 문제를 주로 취재했지만, 다른 단체들에게도 창고 문제는
심각한 현안입니다. 세종문화회관 역시 창고가 모자라고 재공연 계획이 불확실해 무대세트를 폐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여러 단체가 창고를
함께 운영할 수 있다면 비슷한 세트들을 새로 만들지 않고 빌려 쓸 수 있어 예산도 절감하고 쓰레기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 기사가 나간 이후 ‘공쓰재’라는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로 극단들도 공연이 끝난 후 무대세트와 소품을 어떻게 처리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요, 보관하려 해도, 버리려 해도 돈이 듭니다. 그래서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공연 쓰레기 재활용’을 목표로 운영되는 커뮤니티 ‘공쓰재’가 탄생했습니다. 서울연극협회와 스탭서울이 공동 주최하는 일종의 캠페인이기도
합니다. 한 번 사용한 연극의 무대세트나 소품 등을 폐기하는 대신, 필요한
사람이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온라인 장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http://twr.or.kr,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twr.or.kr)
무대 창고는 밖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공연예술의 중요한 기반시설입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실적도 좋지만, 내실 있게 기반을 갖춰가야 합니다. 이런
것도 ‘문화융성’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조건 아닐까요?
*SBS뉴스 웹사이트에 취재파일로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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