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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서

위키드, 영리한 뮤지컬

soohyun 2012. 6. 30. 10:55


뮤지컬 '위키드'가 무대에 올려진 지 얼마 안 됐을 때, 내용이 궁금해서 원작소설을 먼저 구해 읽었다. 원작은 전혀 가족용이 아니다. '오즈의 마법사' 이전 이야기라고 하기에, '오즈의 마법사'와 비슷한 분위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초장부터 내 예상을 빗나갔다. 앨파바가 어떻게 '서쪽의 사악한 마녀'가 되는지 그 과정을 집요하고 설득력있게 그려낸다. 어둡고 신랄하고, 정치적 메시지가 담겼다. 

2008년, 영국 연수 시절에 드디어 런던에서 뮤지컬을 볼 수 있었다. 뮤지컬은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과 기본적 모티브는 같지만, 상당히 달라졌다. 뮤지컬은 앨파바와 글린다 두 사람을 축으로 삼각관계 로맨스를 가미했다. 앨파바의 사랑은 원작과는 달리 해피 엔딩으로 맺어진다.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겁쟁이 사자, 허수아비, 양철인간의 이전 이야기가 등장하는 게 뮤지컬의 재미를 더하는데, 이 부분도 원작 소설과는 많이 다르다. 그러나 나는 당시 함께 공연을 봤던 중국인 친구를 통해 '오즈의 마법사'를 전혀 모르더라도 뮤지컬을 즐기는 데는 별 문제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한국을 찾아온 뮤지컬 '위키드'를 몇 년만에 다시 봤다. 이번에는 아이들까지 같이 봤는데, 새삼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 특성을 잘 알고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느낌이다. 원작의 신랄함은 누그러뜨리고 복잡한 이야기는 단순화했다. '오즈의 마법사'와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재미도 더했다. 두 마녀의 우정이라는 큰 축을 세우고 로맨스를 가미했다. 밝고 화사하게, 남녀노소 누가 봐도 재미있는 가족용 공연으로 만들어냈다. 원작자인 맥과이어는 자신의 소설 '그대로'가 
아니라, 새롭게 각색해 만든 뮤지컬에 대해 굉장히 만족했다 한다. 마녀의 아들이 등장하는 다음 소설을 이 뮤지컬 제작진에게 바치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어쨌든 뮤지컬을 다시 보고 나서 내친 김에, 마녀의 아들과 겁쟁이 사자의 후일담이 등장하는 후속 소설까지 다 읽어버렸다. 맥과이어가 창조한 오즈는 '꿈과 환상의 세계'가 아니다. 잔혹하고, 부조리하고, 정치적 술수와 탄압이, 세속적 욕망과 동물적 본능이 난무한다.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이 날아다니고, 어떤 동물들은 말을 하고, 마술이 낯설지 않은 곳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와 닮았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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