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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팔고 사는 큰 장터가 열렸습니다. 공연이 손에 잡히는 '물건'은 아니지만, 공연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일종의 '상품'이라고 할 수 있죠. 예술가나 예술단체, 제작자들이 파는 쪽이라면, 공연장이나 페스티벌 관계자들은 사는 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공연 시장'이라고 하면,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개념적인 의미의 '시장', 즉 작품 유통이 이뤄지는 공연계 전반을 가리키는 말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공연 거래를 위해 한정된 기간 안에 관계자들이 모여드는 장터, 즉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의미의 '공연 시장'도 있습니다. 지난주 국립극장과 국립극단 등지에서 열린 서울아트마켓 혹은 PAMS(Performing Arts Market in Seoul)'가 바로 그런 시장입니다. 서울아트마켓을 취재해 8시뉴스에 보도했지만, 짧은 리포트 기사로는 아쉬워 좀 더 자세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서울아트마켓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행사로 올해가 7번째였습니다. 
백화점이라면 물건을 죽 진열해 놓고 골라 사기를 권유하겠지만, 아트마켓은 어떻게 할까요? 공연이 상품이니 공연을 보여줘야겠지요. 쇼케이스, 즉 견본공연이 짧은 기간 안에 집중적으로 열립니다. 서울아트마켓은 PAMS Choice라는 브랜드로 공식 쇼케이스 작을 선보이는데, 한국 공연의 해외 진출을 위해 선정한 공연들입니다. 올해는 각 장르에서 13편의 쇼케이스가 열렸습니다. 현재 공연 중인 작품이 아닌 경우엔 보통 30분 내외 분량으로 편집된 하이라이트 공연을 선보입니다. 첫날 개막식 특별공연으로 오태석 연출 '템페스트'가 참가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쇼케이스에 선보인 안은미 컴퍼니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에선 커튼콜 때 해외 참가자들이 무대로 뛰어올라 무용수들과 함께 '막춤'을 추는 흥겨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사진: 오태석 연출, 극단 '목화'의 템페스트>

참고로 올해 초이스 선정작 13편을 적어볼게요. 서울아트마켓이 '추천한' 공연입니다.

*연극: '칼로 막베스'(극공작소 마방진)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공연창작집단 뛰다) '비밀경찰'(극단 동) '1동 28번지 차숙이네'(극단 놀땅)

*무용: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안은미컴퍼니) '노 코멘트'(LDP 무용단) '논쟁'(최상철 댄스 프로젝트) '뮤지컬 체어스'(PDPC)
*음악: '스페이스 뱀부'(공명), '카오스모스'(근동사중주단), '공간에서 숨쉬다'(숨), '정가악회 세계문학과 만나다'(정가악회) 
*복합장르: '불의 절벽'(임민욱)

PAMS Choice 외에 PAMS Link라는 이름의 비공식 쇼케이스도 열렸습니다. 마켓 기간에 자체 공연을 진행하는 작품을 신청 접수하면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33개 단체가 참가했네요. 해외 기관과 협력해 진행하는 해외 쇼케이스도 열렸습니다. 일본의 '히키 칸쿤 토네이도'(하이바이 극단), 호주의 '도시를 짓다'(폴리글랏 극단) 이렇게 두 편입니다.

올해 서울아트마켓에는 87개 국내외 단체들이 참가해 전시 부스를 차렸습니다. 무역 박람회 같은 곳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부스마다 비디오, 팜플렛 같은 공연 홍보물을 비치해 놓고, 공연에 관심 있는 손님들과 상담을 합니다. 해외 진출을 원하는 한국 공연 단체들의 부스가 많기는 하지만, 시나르(캐나다 공연예술마켓), 호주예술위원회, 일본국제교류기금 등 해외 단체도 10곳이 참여해 적극적인 공연 홍보에 나섰습니다. 부스에서는 공연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서 효과적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편리하지요. 저야 취재하러 간 것이었지만, 한꺼번에 많은 공연 관계자들을 만나 요즘 돌아가는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공연을 파는 쪽과 사는 쪽이 꼭 무 자르듯 갈라지는 건 아닙니다. 공연을 사고 파는 일을 동시에 할 수도 있어요. 어떤 공연장이 창작뮤지컬 한 편을 직접 제작했다면 이 공연을 다른 곳에 팔려고 내놓을 수 있죠. 이 공연장은 동시에 다른 곳에서 제작된 좋은 작품을 사들여 자기네 공연장에서 소개할 수도 있고요. 예를 들어 올해 의정부예술의전당은 자체 제작 작품인 '에디트 피아프'를 팔기 위해 서울아트마켓에 참가했지만, 다른 참가단체들이 내놓은 공연 중에 적당한 것을 사들여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할 계획이기도 합니다. 서울세계무용축제 SIDANCE는 한국 안무가들의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기도 하지만, 해외 무용 작품을 초청해 축제에 선보이기도 합니다.

서울아트마켓에서는 쇼케이스와 부스 전시 외에 학술행사도 열렸습니다. 아시아 공연예술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해, 올해 서울아트마켓은 아시아 지역에 중점을 둔 토론 세션을 기획했습니다. 각국의 전문가들이 참가해 왜 아시아를 주목하게 되었는지, 아시아 공연예술의 주요 이슈는 무엇인지, 아시아와 공동 제작 사례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논의했습니다.

'장터'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단순히 '거래'만을 위한 곳이 아니지요. 정보를 교류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곳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네트워킹'이 되겠네요. 서울아트마켓에서는 네트워킹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했습니다. 국내외 주요 참가자들과 개별, 그룹 미팅을 마련해주는 '스피드 데이팅', 예술경영 직군별, 이슈별 소그룹 네트워킹이 이뤄지는 '라운드 테이블', 그리고 런치 미팅과 PAMS Night 같은 행사들입니다. PAMS Night은 일정이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잡혀있더라고요. 날마다 호주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영국문화원 등 관련 단체가 주최하는, 일종의 '파티'라 할까요. 사람 만나고 공연 본 얘기도 나누고, 그런 곳이지요. 저도 한 번 가보고 싶었습니다만, 일정이 안 맞아 그러진 못했습니다. 공식 프로그램이 없더라도 아트마켓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은 네트워킹을 촉진하고, 더 효과적으로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서울아트마켓은 과거에는 '작품을 사고 파는 유통창구'로서, 완성 작품이 중심이 되는 마켓이었지만, 이제는 보다 큰 틀에서 작품의 창작 단계에서부터 유통까지 함께 아우르는 마켓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서울아트마켓을 통해 만난 예술가들이 국경을 넘어 공동 작업을 하는 사례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서울아트마켓을 매개로 복수의 기관이 함께 작품 제작에 나선다든지 하는 사례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고 보면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만난다'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에서도 사람을 만나야만 일이 시작되고,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 무슨 거래를 성사시키진 못하더라도, 여기서 맺은 해외 공연계 인사들과의 친분이 결국은 '자산'이 됩니다. 서울아트마켓에서 한 번 맺은 인연이 가지를 치기도 합니다. 서울아트마켓을 통해 해외 진출한 공연이 관계자들간의 입소문 덕에 다른 곳에서도 계속 초청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자람 씨 등이 출연해 요즘 해외 초청이 줄을 잇고 있는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가 그런 경우입니다.

올해 서울아트마켓은 그 어느 때보다 성황을 이뤘습니다. 해외 참가자가 52개 국에서 200여 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굵직굵직한 해외 페스티벌의 예술감독, 공연장 관계자들이 대거 참가했습니다. 학술행사에 토론자로 초청받은 경우 등을 빼면 모두 자비 참가입니다. 

국내에서는 공연단체, 공연장, 축제 등 공연관계자들이 1500여 명 참가했습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우연 국제부장은 "요즘 유럽은 경제도 나쁘고, 북미 지역에선 자신들의 공연 콘텐츠도 떨어져서 아시아로 시선을 돌려 에너지를 충전하려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동안 유럽 등 서구 중심으로 움직이던 공연예술계가 (서구인들 입장에서는) 신선한 아시아 공연예술에서 활력을 찾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올해 에든버러 페스티벌이 아시아 공연예술을 주 테마로 삼았던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합니다.


                 
                                             <사진: 조셉 거돈 헝가리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예술감독>

조셉 거돈 헝가리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예술감독은 '한국은 고유의 전통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게 매력적'이라고 했습니다. 거돈 감독은 2009년 서울아트마켓에 참가했다가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밤의 꿈'을 지난해 페스티벌에 초청했습니다. 그는 '한여름밤의 꿈' 공연을 헝가리 관객들이 굉장히 좋아했고 현지 리뷰도 좋았다며, 올해도 한국 작품 한두 편을 골라 초청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개막식에서 하이라이트를 선보인 극단 목화의 '템페스트'에 큰 관심을 보이더군요. 두 작품 다 셰익스피어를 한국식으로 풀어냈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그러고 보면 아무래도 한국적 특성이 드러나는 작품들이 해외 진출에 유리합니다.

'아트마켓'이라는 게 나라마다 있는 건 아닙니다. 공연이 활발하게 제작되거나, 국제적 교류가 손쉬운 곳이라야만 아트마켓이 성공적으로 열릴 수 있지요. 아시아 지역에선 도쿄와 싱가포르에 아트마켓이 있지만, 최근에 서울아트마켓이 아시아 중심 공연 마켓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습니다. 역동적인 창작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한국 공연예술계에 해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지요. 지난해까지 서울아트마켓의 PAMS Choice를 통해 한국 공연이 해외로 진출한 사례가 400건에 이르는데요, 올해는 역대 최고의 성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해 서울아트마켓은 지난 14일 폐막됐습니다. 저는 초창기에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았던 서울아트마켓이 성황을 이루는 걸 보고, 한국의 공연예술이 이제 국제 무대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우리 공연예술계 종사자들도 그 동안 상당히 '국제 감각'을 키웠고요. 공연 시장을 넓히고 한국 문화를 알린다는 측면에서 우리 공연이 해외에 소개되는 건 좋은 일입니다. (다만 해외 공연이 반드시 능사는 아니고, 해외에서 공연했다고 해서 그 작품이 반드시 좋은 작품이라는 법도 없습니다. 해외 공연 이력을 작품성 보증 수표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이라 무리하게 해외 공연을 추진하는 경우도 꽤 봤으니까요.)

저는 한국의 공연예술계를 취재해 온 한 사람으로서, 서울아트마켓에서 북적대는 장터의 흥겨움을 느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서울아트마켓이 주최 측의 기대대로 큰 성과를 거뒀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아트마켓을 통해 한국 공연 몇 건을 수출한다는 수적인 기록도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서울아트마켓의 '성과'란 이런 숫자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서울아트마켓이 반드시 일방적인 '수출'만 이뤄지는 곳도 아니고요. 저는 서울아트마켓이, 한국 공연예술계 종사자들이 세계 공연예술계의 흐름을 알고,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새로운 흐름을 창조하는 역동적인 
플레이어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SBS 뉴스 웹사이트 취재파일로도 송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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