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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가 사퇴했다. 이른바 '서울시향 사태'는 여러 논란을 낳았고, 할 말도 많았지만, 아래 글에서는 예술단체장 인사에 초점을 맞춰 썼다. 방송기자클럽회보 12월호에 기고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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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이 있다. 조직에서 사람 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겠다. 조직의 인사는 정말 중요한 만큼 어렵기도 하다. 나는 최근 불거졌던 서울시향 사태를 보며  인사의 어려움을 새삼 실감했다. 서울시향 박현정 대표는 서울대-하버드대 출신에 삼성그룹 임원이라는 화려한 스펙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런 박 대표가 직원들에게 상습적으로 막말을 했을 뿐 아니라, 성희롱까지 했다는 주장이 나오니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박 대표를 임명했던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경악했을 것이다. 참담한 인사 실패다


나는 다년간 문화부에서 일하면서 참 많은
인사 실패를 봐왔다. 돌이켜보니 문화계의 인사 실패는 국공립 공연장이나 예술단체장 자리에 대한 임명권자의 인식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내 생각에 그 인식은 대략 두 가지 정도다. 그 하나는 예술단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기업 출신의 전문 경영인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공연 관련 단체장 자리는 그리 어렵지 않고 폼 나는 자리라서 챙겨주기 좋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서울시향의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박 시장이 영입한
전문 경영인이니, 전자의 경우다. 그런데 나는 이런 식으로 영입된 대기업 임원 출신 전문 경영인들이 성공적으로 예술 단체장직을 수행하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간혹 예외도 있기는 하나, 이들은 대개 공적 예산을 지원받는 예술 단체의 공공성, 예술 상품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전에 하던 방식대로 운영하려다 실패한다

공연계의 평균 연봉이나 복지 수준은 다른 업계에 비해 낮은 편이고
, 밤 시간이고 휴일이고 가리지 않는 서비스업 직종이라 근무 여건이 좋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공연계 종사자들은 다른 업종에 비해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주력 상품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크다. 공연 역시 소비자가 있는 상품이지만, 다른 상품에 비해 심리적 가치가 중요하다. 일반 상품의 효율과 수익성 잣대를 그대로 들이대기는 어렵다. 또 대개 조직이 크지 않고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다 보니 고유의 조직 문화가 형성된다

그런데 박현정 대표는 고유의 조직 문화와 업무 특성
, 일반적인 상품과는 다른 클래식 음악 시장의 논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해하려는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좋은 공연 만드는 보람으로 일하던 서울시향 직원들을 싸잡아 무능력자로 규정해 버렸다게다가 욕설과 막말이 경영자의 권리인 줄 착각하고 마구 행사했다. 잘 해보자는 희망에 찼던 서울시향 직원들은 박 대표 취임 이후 하나 둘씩 떠나고, 조직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공연계 아니라 다른 기업에서라도 이런 식으로 성과를 올릴 수 있을지 나는 무척 궁금하다)

전문 경영인이 예술단체장이 되면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예술단체에도 전문 경영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왜 전문 경영인은 민간 기업에만 있다고 생각하는가. 예술계 출신이면 전문 경영인이 아니고, 민간 기업 출신이면 전문 경영인인가. 민간 대기업 임원을 했다고 해서 다 경영 능력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또 다른 분야에서 경영 능력이 있다 해서 반드시 공연계에서도 잘 한다는 보장이 있는가. 물론 잘 할 수도 있다. 다만 공연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전문 경영인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환상은 버려야 한다는 얘기다.

예술단체장은 폼은 나고 어렵지 않은 자리라서 챙겨주기 좋다고 생각하는 건 더 큰 문제다
. 이러면 예술단체장은 사실상 아무나 가도 상관없는 자리가 된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눈에 띄는 고위직이나 다른 분야 단체장 자리에 가기는 애매하고, 챙겨주기는 해야 하는 사람들이 예술단체장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예술과는 아무 상관없이 정치권 주변에서 얼쩡대던 사람이나, 예술계 종사자라지만 내세울 업적도 인지도도 없었던 사람이 갑자기 연줄 덕분에 전문가로 포장돼 자리를 꿰찬다. 이런 사례가 너무 많아서 요즘 예술단체장 자격은 듣보잡인 것 같다는 웃지 못할 농담까지 들었다

예술단체장에 대한 인식 가운데 전자는 예술단체장의
경영 능력을 중시하는 것이고, 후자는 예술 단체장은 웬만하면 아무나 해도 된다는 것이니, 전혀 다른 얘기 같아 보인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공연계 고유의 특성과 자율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긴, 그 분야의 특성과 자율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게 어디 공연계 인사만의 문제이겠는가. ‘인사가 참사라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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