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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북미투어 취재기를 SPO 6월호에 기고했다. 예전에 썼던 후기와 겹치는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이를테면 '완결편'이라 여기 올려둔다. 

지난 4월 서울시향 북미 투어를 동행 취재했다. 취재를 마치고 쓴 기사는 4 21SBS 8시 뉴스에 한국 오케스트라에 반했다는 제목으로 나갔다. 이 기사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물어왔다. “정말 서울시향이 그렇게 잘해?” LA 특파원 선배도 서울시향 공연 취재하러 왔다 하니 같은 질문을 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질문한 사람들은 한국 예술가가 해외로 진출한 것만으로도 기사가 되던 시절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러니 이 질문은 사실 이런 뜻이다. “서울시향이 정말 외국에서도 통해? 한국에서만 유명한 거 아니야?”

서울시향은 캐나다 밴쿠버(4 15)에서 시작해 미국 시애틀(4 16), 산타 바바라(4 18), 로스 앤젤레스(4 19)까지, 북미 서부 4개 도시에서 공연했다. 2010년과 2011년 유럽 투어로 자신감을 충전한 서울시향이, 유럽과 함께 최대 음악시장으로 꼽히는 북미 대륙에 본격적으로 데뷔한 무대였다.

서울시향은 이번 투어 프로그램에 드뷔시의 라 메르’, 라벨의 어미 거위라 발스’, 차이콥스키 교향곡 6비창’,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그리고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 를 포함시켰다. ‘불새는 시애틀에서만 공연했고, 2009년에 생황 협주곡이 초연됐던 LA에서는 생황 협주곡을 제외하는 등 도시마다 약간씩 연주곡목을 달리 했다. 앙코르로는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와 브람스 헝가리무곡 1번을 선보였다. 대부분 지난 투어에서도 연주했던, 서울시향이 장기로 삼는 곡들이다.

서울시향은 가는 곳마다 호의적인 관객의 반응과 평단의 리뷰를 이끌어냈다. 첫 공연지였던 밴쿠버에서부터 관객의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고, ‘밴쿠버 선의 리뷰는 서울시향이 품격 있는 연주를 들려줬다고 호평했다. 중국인 연주자 우웨이가 협연한 생황 협주곡은 특히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밴쿠버에서 서울시향은 베스트를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투어 시작 직전까지 바쁜 일정을 소화해 피로했던 탓인지, 앙상블이 헐거워지거나 미세한 실수가 나오는 순간이 있었다.        

밴쿠버 공연 바로 다음날이 시애틀 공연이었다. 밴쿠버에서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시애틀로 이동해 바로 그 날 저녁에 공연했으니, 무척이나 빡빡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서울시향의 연주는 시애틀에서부터 완전히 궤도에 올랐다. 이 곳에서만 공연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는 찬란한 색채와 격동하는 리듬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객석 반응은 밴쿠버 때보다 더욱 뜨거웠다. 정명훈은 본 공연 프로그램을 마친 후 마이크를 잡고,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처음 정착했던 곳이 시애틀이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이 도시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공연장인 베나로야 홀은 시애틀 심포니에 거액을 기부한 사업가 이름을 붙여 지어졌다. 베나로야 홀은 아주 선명하면서도 풍부한 음향을 자랑했다. 음향이 워낙 좋아 작은 실수도 금방 드러나기 때문에 연주자에게는 쉽지 않은 공연장이기도 한데, 서울시향의 연주는 아주 깨끗하고 윤기 나는 소리로 울려 퍼졌다. 특히 생황 협주곡에는 물을 휘젓는 소리, 종이를 구기는 소리, 피아노 현을 긁는 소리 등 온갖 악기들의 다채로운 소리가 등장하는데, 어찌나 또렷하고 생생하게 들리는지, 여러 차례 들었던 곡인데도 마치 새로운 곡을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작곡가 자신이 내가 쓴 음표 하나하나가 다 들린다며 기뻐할 정도였다.

다음 공연은 부촌으로 이름난 산타 바바라의 그라나다 극장에서 열렸다. 클래식 전용 공연장은 아니지만, 고정 관객이 많고 유명 연주단체가 많이 거쳐간 곳이다. 관객들은 대부분 백인이고 연령대도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다. 웬만한 유명 음악가들의 연주는 다 들어본, 산전수전 겪은 베테랑 관객들이다. 처음 접하는 한국 오케스트라에 대한 호기심은 공연이 진행될수록 감탄으로 바뀌었고, 여기서도 기립 박수가 어김없이 터져 나왔다.  

마지막 공연은 LA가 자랑하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LA는 이번 북미 투어의 종착지이자, 정명훈 씨가 30년 전 LA 필에서 지휘 경력을 처음 쌓기 시작한 도시이며, 미국 내 한국교민사회의 중심지이다. ‘젊은 피구스타보 두다멜을 지휘자로 맞아들인 LA 필은 다양하고 혁신적인 프로그램으로 각광받고 있는 중이다. 서울시향의 공연은 LA 필의 정규 시즌 프로그램에 포함됐다. ‘비지팅 오케스트라시리즈에 올해 뉴욕 필, 보스턴 심포니와 나란히 초청된 것이다.

여러 모로 LA 공연은 중요한 공연이었다. 현지 음악계의 관심이 높았고, 공연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서울시향은 이 공연의 의미에 걸맞은 호연을 선보였다. ‘라 메르라 발스’, 교향곡 비창을 연주한 이 날, 정명훈의 지휘는 더욱 여유로웠고, 서울시향은 섬세함과 젊은 활력을 함께 갖춘 연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본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인 차이콥스키 비창교향곡이 끝나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고, 앙코르였던 보칼리제헝가리 무곡 1에는 때마다 커다란 환호성과 함께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정명훈은 인터뷰에서 이번 투어의 성과에 만족한다고 했다. 자신은 칭찬에 인색해서 단원들에게 좀처럼 잘 했다는 얘기를 안 하지만, 이번 투어는 정말 열심히, 잘 해 줬다고 했다. 그는 서울시향의 경쟁력을 한국인의 열정(Passion)’에서 찾았다. 북미나 유럽에는 서울시향만큼, 혹은 서울시향보다 기량이 뛰어난 오케스트라도 많다. 하지만 서양 오케스트라는 기량은 뛰어나되 기계적인 연주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울시향은 특유의 열정을 담아 연주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구스타보 두다멜이 이끄는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에서 내가 큰 감동을 받았던 이유도 비슷하다. 단원들 하나하나가 연주에 혼을 담아, 정말 열심히, 정말 행복하게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으니까. 서울시향의 연주 역시 그와 비슷한 감동을 관객들에게 안겨준 것이다. 물론 열정만 갖고는 안될 일이다. 정명훈 취임 이후 몇 년간 크게 향상된 기량이 뒷받침된 결과다.

LA 공연이 끝난 직후 인터뷰한 미국인 관객 피터 존스도 그걸 느낀 것 같다. 그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수많은 공연을 봤지만, 오늘밤 처음 만난 서울시향의 연주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공연의 감동으로 눈시울이 촉촉해져 있었고, 행복한 흥분 상태에 빠진 듯했다. 혼자 공연을 봤다는 그는 벅찬 감동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인지,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열정과 진심을 담은 연주가 통한 것이다.

서울시향은 해외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젊고 현대음악에 강한 오케스트라로 위상을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면에서 서울시향이 지난해 투어에 이어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을 프로그램에 포함시킨 건 성공적인 전략이었다. 수많은 명문 오케스트라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여러 번 연주해온 전통적인 레퍼토리보다는 신선한 현대음악이 더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다. 게다가 생소한 아시아 악기인 생황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과연 생황 협주곡은 가는 곳마다 격찬을 받았으며, LA 타임스는 서울시향의 생황 협주곡을 LA 관객들이 듣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산타 바바라 관객들은 더 좋았겠다고 썼다.

이번 취재에서 서울시향의 연주 외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공연장이었다. 특히 나는 시애틀의 베나로야 홀에서 이전에 알던 곡이 다르게 들리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오케스트라의 악기는 콘서트홀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했고, 시애틀 관객들이 부러웠다. LA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역시 훌륭한 음향으로 이름난 홀이다. 월트 디즈니의 아내인 릴리언 디즈니가 내놓은 거액의 기부금, 그리고 수많은 기업과 개인의 후원, 정부 지원이 합쳐져 탄생했다.

밴쿠버 오피엄 극장에는 밴쿠버 심포니, 베나로야 홀에는 시애틀 심포니,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는 LA 필이 각각 상주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서울시향은 전용 콘서트홀이 없다는 게 아쉽게 느껴졌다. 서울시향은 주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대관해 정기연주회를 열고 있지만, 전용 콘서트홀을 가진 것에는 비할 바가 아니라서 프로그램 운용에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서울시향은 전용 콘서트홀은 커녕 연습실도 열악한 상황이다. 정명훈 씨가 기회만 있으면 내 꿈은 서울시향 전용 콘서트홀이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서울시향이 그 동안 눈부시게 발전했고,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훌륭한 오케스트라는 뛰어난 연주자들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과 지원 시스템, 그리고 시장이 함께 갖춰진 곳에서 나온다. 오케스트라는 한 도시나 국가의 문화 역량을 반영하는 척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진부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서울시향의 북미 투어는 그래서 한국의 문화적 역량을 미국 관객들과 음악계에 새롭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마도 이번 투어를 후원한 현대자동차 역시 눈에 보이진 않지만 큰 효과를 거뒀으리라 생각한다.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첫머리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정말 서울시향이 그렇게 잘해?” 혹은 서울시향이 외국에서도 통해?” 나는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시향 잘 한다. 외국에서도 통한다. 물론 여기엔 이미 세계적인 지휘자인 예술감독 정명훈의 존재가 절대적이다. 아직은 누가 지휘하든’, ‘어떤 곡을 연주하든’, 고루 잘 한다고 얘기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이 자신 있는 레퍼토리를 골라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면,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다. 내가 8시 뉴스 기사를 서울시향의 북미투어 성공은 우리도 이제 세계에 내놓을 만한 오케스트라를 갖게 됐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고 마무리한 건 해외 진출 자체를 추어올리는 호들갑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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