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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가 공연 10주년을 맞았다.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는 사실 오래 전부터 꽤 유명세를 탄 공연이다. 나는 지난 2002년 초, 이 공연을 취재 보도한 적이 있다. 2001년 당초 2주 예정으로 유시어터에서 개막했던 이 연극은 어린이극으로 만들어졌지만, 어른 관객들에게 더욱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내면서 연장에 연장 공연을 거듭했다. 내가 취재했을 때에는 세 번째 연장 공연이 이뤄지던 때였다. 가수 이기찬의 뮤직비디오에 이 연극이 사용됐고, 책 발간도 앞두고 있었다.

말 못하는 막내 난쟁이 반달이가 백설공주를 남몰래 사랑하고, 백설공주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목숨을 걸고 구해주지만, 끝내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백설공주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반달이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 동화적인 상상력으로 빚어낸 어린이 연극이지만, 어른인 나도 연극을 보면서 웃고 울었다. 반달이의 조건없는 순수한 사랑, 희생적인 사랑에 감동했기 떄문이었다. 그리고 내 아이에게도 이 연극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극은 이후에도 꾸준히 공연됐지만, 두 번째로 본 것은 지난해 말이었다. 2002년 당시엔 너무 어려서 못 봤던 큰 아이, 그리고 그 이후에 태어난 둘째 아이까지 데리고 가서 봤다. 마침 내가 사는 집 근처 복합 공연장에서 공연되고 있었다.  공연장이 유시어터보다 훨씬 커서 집중하기 어려웠고, 당시만큼의 밀도가 느껴지진 않았지만, 다 아는 줄거리인데도 나는 또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아이들도 나만큼 이 공연을 재미있게 봐 주기를 기대했지만, 큰 아이는 그다지 재미있게 본 눈치가 아니었다. 게다가 시니컬하게, '백설공주도 착한 척 하더니 할 수 없네. 키 크고 잘 생기고 돈 많은 사람한테 가는 걸 보니.' 했다. 헉! 오히려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둘째가 반달이가 병상에 누워있는 장면에서 자꾸 눈을 비볐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 하고 쑥스러워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보고 나서 연출가 박승걸 씨와 오랜만에 연락이 되었다. 박승걸 씨 얘기를 들으니,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들의 반응이 가장 덤덤하다고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면 학교에서도 상급생이고, 어른처럼 행동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어린이 공연스러운' 요소들을 '어린 아이들이나 보는 유치한 것'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러고 보니 큰 아이도 그랬던 것 같다. '뭐야, 백설공주라니, 애들이나 보는 거 아냐?' 이런 심리. 오히려 더 나이를 먹으면 어린이 연극이 유치하거나 시시하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즐길 수 있을지도.   

그리고 또 한 가지, 오래 전 내가 이 공연을 취재하고 썼던 표현이 아직도 이 공연을 설명하는 중요한 '카피'처럼 쓰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바로 '마법에 걸린 연극'이라는 표현이었다.  이 공연의 성공은 공연계에서는 정말 '마법 같은' 일이었다. 본래 2주 예정으로 개막됐던 공연이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고, 어린이 뿐 아니라 어른 관객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고, 배우의 팬클럽이 아닌, 최초의 공연 팬클럽이 개설되는 데까지 이르고, 가수 이기찬의 뮤직 비디오에 등장하고, 2002년 당시에도 20번 이상 봤다는 열혈 관객들이 있었을 정도니까. 

'마법에 걸린 연극'. '마법에 걸린 관객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는 표현. 지금은 잘 기억나지도 않는 내 기사의 편린을,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공연의 보도자료에서 엿보게 되니, 기분이 묘하면서도, 이 공연에 내가 남들과는 다른 나름의 '인연'을 갖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마침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10주년을 맞아(?) 문화부 공연 담당으로 복귀한 내가 10주년 기념 공연을 취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번 기사의 포인트는 '함께 만들어가는 작은 역사'로 잡았다. 어린이극이지만 어른들이 많이 봤기 때문에, 초창기 관객 중에서는 그동안 부모가 되어 다시 자녀를 데리고 이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이 처음 공연 볼 때 내 아이에게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아이들과 함께 다시 보게 됐으니 말이다. 

실제로 이번에 취재할 때, 자녀를 데리고 온 관객들 중에 그런 케이스가 꽤 있었고, 인터뷰도 할 수 있었다. 엄마는 '이 작품을 꼭 보여주고 싶었고, 이런 감성을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고 했다. 엄마 따라 온 소년은 '앞으로 제가 아빠가 되면 제 아이한테도 공연 보여주고 싶어요'라고 했다. 

학창시절 이 공연을 보고 공연 팬클럽 '백설기마을' 회원이 됐고, 덕분에 '배우의 꿈'을 키우다가 실제로 배우가 되어 이 공연에 출연한 케이스도 있다. 산들마음 역의 배우 이다연 씨다. 중학교 때 이 공연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나도 저렇게 무대에서 감동을 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더욱 확고히 했고, 그 꿈을 이뤘다고 했다. 특히 초연 때 반달이 역을 맡아 스타가 된 최인경 씨와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최인경 씨는 그동안 아이 엄마가 되어 무대를 잠시 떠나 있다가 반달이 역을 다시 맡아 복귀했다. 최인경 씨는 반달이의 사랑과 엄마의 사랑은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며, 엄마가 된 지금, 반달이의 사랑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작품과 함께 나이 들어가고, 성숙해 가는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번에 공연을 세 번째로 본 것인데, 나는 또다시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최인경 씨의 반달이 연기는 여전히, 아니, 예전보다 더욱 더, 마음 속 깊이 다가왔다. 그동안 엄마가 된 이 동안의 배우에게, 반달이만큼 잘 맞는 역은 찾기 힘들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의 감정적 파장은 2002년 이 공연을 처음 봤을 때와 다름없었다. 세월이 꽤 흘렀건만 이 연극의 '마법'은 녹슬지 않았다. 여전히 객석에는 어른들이 더 많았다. 박승걸 씨는 이 공연은 여전히 '어린이극'이라면서, 어린이들이 좀 더 많이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의 10주년을 취재한 기사는 곧 방송될 예정이다. 기사를 쓸 때 '난장이'의 표기를 두고 잠깐 고민했다. '난장이'의 맞춤법상 맞는 표기는 '난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연 제목으로 쓰인 단어를 마음대로 '난쟁이'로 바꿀 수는 없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표기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기사에서 공연 제목을 일컬을 때는 '난장이'로 표기하되, 공연 내용을 설명할 때는 표준어인 '난쟁이'로 표기했다. (그런데 2002년 기사에서는 당시 데스크의 조언에 따라 공연 제목 표기도 '난쟁이'로 고쳤던 것 같다. 별 거 아닌 문제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것도 고민거리가 된다.) 

이 연극이 세운 흥행 기록은 '국내외 120개 도시에서 2,300여 회 공연되며 70만 관객이 봤다'는 것이다. 소극장 연극으로는 드문 기록일 것이다. 10주년 기념공연은 오픈 런으로 진행되니, 이 기록은 계속 새로 쓰여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록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이 연극을 만든 사람들, 이 연극을 본 사람들이 함께 쌓아온 작은 역사들이 아닐까. 나에게도 이 공연으로 맺은 인연이, 추억이, 얘깃거리들이 벌써 꽤 쌓였으니 말이다.   

*SBS 뉴스 인터넷 '취재파일'로도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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