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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공연계 지인과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문화뉴스가 많이 변했다는 얘기까지 이르게 됐다. 이 지인은 한 신문사가 운영하는 뉴스 전광판에 흘러나오는 '문화뉴스' 자막을 보고 기가 막혔다고 한다. 문화뉴스는 단 두 개였는데 하나가 "임재범, 영혼을 달래려 영국여행"이었고, 또 하나가 빅뱅 대성의 교통사고 관련 뉴스였단다. 


문화부로 복귀해 다시 공연 취재를 맡게 되면서 이제 나 같은 '구식 문화부 기자'는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방송 뉴스도 많이 변했다. '대중의 관심이 높은 기사'를 원한다. 요즘 방송 뉴스의 문화 기사는 솔직히 연예 프로그램의 꼭지와 크게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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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뉴스에 기사를 못 내면 글이라도 열심히 써야겠다 다짐했는데, 기대한 만큼 내 글이 읽히는 것 같지도 않다. 요즘은 솔직히, 기운이 많이 빠진다.......그래서 올해 초에 썼던 이 글, 다시 올려본다. '구식 문화부 기자'로 쭉 가보겠다고 선언했던 글. 씨엘로스 웹진에도 기고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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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로 돌아왔다. 내 기자 생활에서 세 번째 문화부 근무다. 3년 반 만에 공연 취재를 다시 맡게 되었다. 예전에 비해 커다란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가장 처음 이 ‘변화’를 느낀 것은 올해 초 취재했던 연극 ‘이기동 체육관’의 프레스콜에서였다. 


‘이기동 체육관’은 2009년 대학로 소극장에서 초연됐는데, 좋은 반응을 얻어 다시 무대에 올랐다. ‘이기동 체육관’은 왕년의 권투선수 이기동이 운영하는 쇠락한 권투 도장을 배경으로 소시민들의 꿈과 사랑, 좌절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프레스콜은 먼저 연극을 전막 공연으로 보여준 뒤에 기자 간담회가 이어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취재진이 굉장히 많았다. 같은 방송사 로고가 붙은 카메라가 여러 대 보이는 경우도 많았는데, 뉴스뿐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에서 촬영 나온 모양이었다. 이 연극에는 유명 배우 김수로와 가수 솔비가 출연했다. 공연 홍보는 이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공연장에 내걸린 대형 홍보물에도 김수로를 전면에 내세웠다. 홍보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프레스콜이 취재진으로 붐빈 것도 이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공연을 보니 김수로와 솔비가 맡은 역은 주인공은 아니었다. 김수로가 맡은 역은 관장과 이름이 같은 이기동이라는 청년이다. 이 역은 극의 전개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하는 것으로 설정되지만, 등장하는 장면이나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그리 많지 않아서, 비중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가수 솔비는 권투를 통해 변화하는 문제아 역할로 출연했는데, 역시 비중이 큰 역은 아니었다.  

 공연이 끝나고 이어진 간담회에는 연출가와 출연진이 모두 참석했다. 아무래도 질문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먼저 손을 들고 연출가에게 작품과 관련해 권투를 소재로 택한 이유라든지, ‘이기동 체육관’이라는 작명의 의도라든지, 내가 궁금했던 사항을 몇 가지 물어봤다. 

 이후 질문들은 김수로와 솔비에게 집중됐다. 김수로는 대학로에서 이 작품을 보고 매료돼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김수로는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격’이라며 이 작품에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김수로는 극단 ‘목화’ 출신으로 영화 출연 이전부터 대학로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어지는 질문을 듣다 보니, 공연 자체에 대한 것보다는 연예인 개인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뤘다.  

 김수로에게 ‘권투 연습을 많이 해서 몸매가 좋아졌을 텐데, 다음 번에는 상반신 탈의를 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이 던져지고, 김수로가 대답하면서 ‘사실 제가 상반신 탈의를 ‘반칙왕’에서부터 했으니까 상반신 탈의 1호예요’라고 하는 식이었다. 김수로와 솔비, 그리고 더블캐스트라 이 날 공연에는 출연하지도 않았던 미인대회 출신의 한 배우도 질문을 받았는데, 정작 조금 전까지 열연한 이기동 관장 역을, 비롯한 주요 배우들은 아무런 질문도 받지 못했다. 다음 취재 때문에 기자간담회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자리를 떴지만, 이 분위기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스타에게 관심이 쏠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실력이 안 되는데도 무조건 유명세 때문에 스타를 기용한다면 문제겠지만, 적절한 스타 캐스팅은 대중의 관심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공연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 나도 이 공연을 소개한 기사에 김수로와 솔비가 출연한 것을 언급하고 김수로의 인터뷰도 썼다. 이 공연에서 화제가 될 만한 ‘팩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타 캐스팅은 사실 오래 전부터 심심치 않게 이뤄져 왔으니,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변화’를 느꼈다고 한 것은, 예전에는 스타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공연이라 해도 기자간담회 분위기가 이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에는 연예 뉴스를 다루는 매체가 지금처럼 많지는 않아서 그랬을까. 나는 취재 현장에서 스타를 쫓아다니며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연예 뉴스의 공급이 정말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기동 체육관’의 기자간담회 도중에도 수많은 기자들이 인터넷으로 사진과 기사를 송고하고 있었다. 
   
 
나중에 ‘이기동 체육관’과 ‘김수로’를 검색어로 포탈에서 기사 검색을 해봤더니 700건이 넘었다.  연예 뉴스를 다루는 매체들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연예 기사라고 해서 모두 알맹이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별 내용 없이 사진에 제목만 그럴 듯하게 붙인 것들이 다수였고, 기자 간담회 내용을 기사 한 편으로 정리하지 않고, “상의 탈의 연예인 1호는 바로 나”, 혹은 ‘권투 했더니 몸이 예뻐졌어요” 하는 식으로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제목으로 삼아 쓴 기사들도 많았다. 

최근에 뮤지컬 ‘천국의 눈물’을 취재했다. 이 역시 JYJ 김준수의 출연으로 화제가 된 공연이다. 100개 이상의 매체가 프레스콜에 참석했다. 취재진이 너무 많아 주최측이 준비한 번호표를 선착순으로 받아 차례로 입장했다. 김준수의 위력이었다. 카메라가 몇 대인지 세기도 어려웠다. 해외 스탭들이 신기해 하며 취재 현장을 개인 카메라로 촬영할 정도였다. 개막 공연을 마친 후 인터넷 포털에 ‘김준수’와 ‘천국의 눈물’을 검색어로 넣고 검색했더니, 무려 1,600여 건의 기사가 떴다. 역시 공연보다는 김준수의 일거수일투족에 초점을 둔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수요 없는 공급이 어디 있으랴. 연예 뉴스의 공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수요도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타와 관련한 뉴스를 궁금해 한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방송 프로그램이나 스타 관련 기사를 찾아볼 때가 있다. 연예 뉴스는 대중의 관심이 높은 뉴스다. 사회적 의미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연예 뉴스라고 다 뉴스 가치가 없다는 얘기도 아니고, 연예 뉴스가 무조건 나쁘다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연예 뉴스가 지나치게 많은 것은 문제다. 연예 뉴스를 다루는 매체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따라서 자극적인 제목으로 관심을 끌려는 기사도 더 많아졌다. 본질과는 관련 없는 선정적인 기사들이 양산될 위험이 크다. 게다가 요즘은 이런 연예 뉴스 경쟁이 ‘대중이 원한다’는 전제 아래, 매체를 가리지 않고 치열해지고 있지 않은가. 

 그야말로 ‘연예 뉴스 권하는 사회’다. 방송을 보라. 연예 전문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교양’이나 ‘정보’를 내세운 사실상의 연예 프로그램이 늘면서 돌리는 채널마다 시시콜콜 연예인의 동정을 전한다. 방송 뉴스에서도 ‘아이돌’의 등장이 잦아졌다.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다는 이유로,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 보던 내용들이 주요 뉴스로 전파를 탄다. ‘기사에 연예인이 등장한다’기보다는, ‘연예인을 등장시키기 위해 기사를 만든다’고 해야 할 경우도 종종 있다. 인터넷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인터넷은 연예 뉴스의 거대한 바다다. 이 바다에 잘못 발을 디디면 정작 내게 필요한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가벼운 심심풀이로 소비되는 연예 뉴스의 홍수 속에 ‘무거운’ 기사는 설 자리를 잃는다. 공연의 내용과 의미를 이야기하는 ‘전통적인’ 문화 기사 역시 ‘재미없고 무거운’ 기사로 외면 받기 쉽다. 나는 공연의 내용과 의미를 다루는 기사보다 연예인 동정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은’ 현 상황이 달갑지 않다. 별 내용 없이 연예인 말 한 마디를 제목으로 삼고, 연예인 사진 한 장 달랑 박아 넣은 기사들이 넘쳐나는 상황이 불편하다. 어찌 됐든 연예 뉴스의 홍수가 결국 대중의 욕구 때문이고 이 시대의 흐름이라면, 이를 불편해 하는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 문화부 기자’인지도 모른다. 

 정년퇴임을 한 후에도 카메라 메고 열심히 공연 현장을 누비는, 타 매체의 선배 기자가 있다.  그는 지금도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을 취재하고, 예술가들을 인터뷰하고, 리뷰를 써서 자신이 일하던 매체에 ‘객원기자’ 자격으로 기사를 싣는다. 얼마 전 연극 취재 갔다가 만났는데, 이 선배 역시 ‘우리 회사도 요즘 문화 기사의 절반 이상이 연예 뉴스야. 이런 공연 기사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하고 씁쓸해 했다. 그러나 그는 같이 씁쓸해 하는 나에게 ‘이런 기사 쓰는 사람도 필요하니, 너무 낙담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줬다. 


 그래, 그냥 하던 대로 열심히 하자. 문화부로 다시 돌아와 커다란 ‘변화’를 느꼈다면서도 ‘하던 대로’ 하겠다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연예 뉴스의 바다 속에서도 ‘전통적인’ 문화 뉴스에 대한 수요 역시 (상대적으로 소수일지는 모르겠지만) 존재한다. 어차피 연예 기사 전문가들은 차고 넘치니, 소질도 감각도 없는 내가 시대의 흐름에 맞춘답시고 억지로 연예 기사를 쓸 수도 없는 일. 이왕 ‘구식 문화부 기자'

로 걸어온 길, 앞으로도 쭉, 제대로 한번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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