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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딴 따단~ 딴 딴 따단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 때 울려 퍼지는 이 곡. 다들 아시죠? ‘결혼행진곡’입니다. 지난 금요일 SBS 8뉴스에서 ‘바그너 탄생 200주년’ 관련 리포트는 바로 이 곡으로 시작했습니다바그너, 하면 어렵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결혼행진곡의 작곡가라는 점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었으니까요.


‘결혼행진곡’으로 알려져 있는 이 곡은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중에 나오는 ‘혼례의 합창’(Bridal Chorus. 영어권 국가에서는 Here comes the bride, 혹은 단순히 Wedding March로 불리기도 합니다. Wedding March는 사실 이 곡뿐만 아니라 결혼식에서 연주되는 행진곡풍의 곡을 통틀어 부르는 명칭이기도 합니다)입니다. ‘로엔그린’의 여주인공 엘자가 ‘성배의 기사’ 로엔그린과 결혼하는 장면에서 연주되는 곡이죠.

성배의 기사인 로엔그린은 홀연히 나타나 어려움에 빠진 엘자를 구해주고 엘자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라’는 조건을 내겁니다. 하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한 엘자가 결혼식날 금단의 질문을 하게 됩니다. 로엔그린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밝힌 뒤 떠나버리고 절망에 빠진 엘자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게 이 오페라의 대략적인 줄거리입니다.

얘기가 옆길로 새지만, 보지 말라, 물어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고, 물어보고 싶은 게 인간의 심리죠. 이런 호기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얘기가 참 많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시케 역시 에로스의 얼굴을 보기 위해 불을 밝혔다가, 에로스가 떠나가고 엄청난 고초를 겪게 됩니다. 판도라 역시 호기심 때문에 ‘열어보지 말라’던 상자를 열고야 말았고요. 그러고 보면 인간의 호기심은 정말 힘이 센가 봅니다.  

어쨌든, ‘혼례의 합창’을 결혼식에서 연주하는 관행이 생긴 것은 1858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딸인 빅토리아 공주의 결혼식 때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술 애호가였던 이 공주는 자신의 결혼식에서 연주될 곡들을 직접 골랐다고 합니다. 공주는 바그너의 열성 팬으로 ‘혼례의 합창’을 결혼식에서 입장할 때 연주되도록 했다네요. 이후 ‘혼례의 합창’을 결혼식에서 연주하는 게 유럽의 귀족 사회에서 유행이 되었고, 이 유행이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이 유행이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한국에까지 닿은 셈이지요

비극으로 끝나는 오페라 ‘로엔그린’의 내용상 행복한 결혼식에서 이 곡을 연주하는 게 걸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건하고 아름다운 ‘혼례의 합창’, 이 한 곡만 놓고 보면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는 결혼식에 참 잘 어울리는 곡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결혼식에서 신부가 입장할 때(요즘은 신랑 신부가 함께 입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만)는 주로 혼례의 합창, 즉 바그너의 결혼 행진곡을 연주합니다만, 결혼식 마지막에 퇴장할 때는 다른 곡을 연주합니다. 바로 멘델스존의 ‘축혼 행진곡(영어로는 역시 Wedding March입니다)이죠. 멘델스존이 셰익스피어의 유쾌한 희극에 음악을 붙인 ‘한여름밤의 꿈’에 나오는, 주역 커플들의 결혼식에서 연주되는 해피 엔딩의 곡입니다. 결혼식을 마무리하는 곡으로는 ‘해피 엔딩’인 ‘한여름밤의 꿈’에 등장하는 결혼 음악이 적합해서 이렇게 연주한다는 해석이 설득력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빅토리아 공주의 결혼식에서 바그너와 멘델스존의 곡이 각각 입, 퇴장 곡으로 짝지어 연주됐습니다

요즘은 결혼식 때 연주도 피아노만 하는 게 아니라 현악 4중주단이 동원되는 등 굉장히 다채로워졌지만, 예전에는 피아노 한 대로 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저는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았습니다만, 어린 시절에 몇 차례 결혼식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대단히 잘 쳐서가 아니라 결혼하는 커플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 직접 연주한다는 의미가 있어서 연주자로 동원된 경우였죠.

제가 ‘연주자로 뛴’ 첫 결혼식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 결혼식이었습니다. 바그너의 결혼행진곡과 멘델스존의 축혼행진곡을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지금도 앞부분은 외워서 칠 수 있을 정도예요. (솔직히 뒷부분은 연습 안 했습니다. 입 퇴장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바그너는 ‘결혼행진곡의 작곡가’로 먼저 친숙하게 다가왔어요바그너의 오페라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게 됐고요.

이렇게 ‘소싯적에 결혼식 연주 몇 번 뛴 경험’이 이번 뉴스 리포트를 만들 때 도움이 됐습니다. 이 기사를 ‘결혼행진곡’으로 시작하겠다고 생각하고 맨 처음엔 영화나 드라마에서 결혼식 장면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바그너의 결혼행진곡이 뉴스에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 동안 흘러나오는 화면을 구하지 못했어요. 있더라도 오래 전 것이라 화질이 나빴고요. 최근에 결혼한 친구들 웨딩 비디오까지 수배했는데, 결혼행진곡을 연주하지 않은 경우라서 적당한 화면을 구하는 데 실패했죠. (이번에 취재하다 보니 요즘은 신부 입장곡으로 ‘She’ 같은 감미로운 멜로디의 노래들을 종종 쓰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고심 끝에, 할 수 없이 제가 직접 쳤습니다. 서울시향의 바그너 연주회 리허설을 취재하고 나서 연습실에 있던 피아노로 쳤지요. 서울시향 단원 몇몇은 리허설이 끝나고도 안 가고 남아있어서 그 앞에서 치느라 창피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전문가들 앞에서 아마추어가 연주를 한 셈이니까요. 이런 걸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다’고 하나요. 그리 어려운 곡은 아니지만 여러 번 NG를 냈어요. 그래도 덕분에 꿈에 그리던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생전 처음 쳐봤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만든 리포트가 서울시향 공연이 지난 1 25일 취소되면서 한 동안 못 나갔던 사연은 당시 취재파일(공연이 ‘킬’되고, 기사도 ‘킬’ 되고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608244)에서 말씀드린 쓴 적 있으니 다시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때 취소됐던 공연이 5 7일에 열려서 기사가 다시 살아났습니다그런데 그 동안 계절이 바뀌었으니 다시 찍어야 한다면 그 창피한 짓을 또 어떻게 할까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다행히 몇 달 전 화면이지만 그리 어색하지는 않더라고요. 요 며칠 사이 날씨가 여름처럼 더워졌지만, 지난주까지만 해도 날씨가 쌀쌀했잖아요. 그래서 촬영을 다시 하지는 않았고 기사만 조금 고쳐서 다시 편집했습니다.


하도 바그너가 어렵다 해서 기자가 이런 ''까지 했습니다. 이 리포트가 나갈 때 저회 회사 사무실에서 같이 보던 회사 사람들이 화면이 ‘결혼행진곡’ 멜로디를 치는 손에서 제 얼굴로 옮겨가니까 ‘깜짝’ 놀라더라고요이 리포트를 본 사람들이 ‘기자가 직접 연주하는 스탠드업이 신선했다’고 평가해 줘서 다행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연주하게 된 것이었지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한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시도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정말 그렇게 생각해도 될까요?^^

제 결혼행진곡 연주가 마음에 드셨든 드시지 않았든, 이것 하나만 알아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방송 뉴스의 기사는 굉장히 짧지만, 방송 기자들은 어떻게 하면 이 짧은 시간 안에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어렵게 느껴지는 이야기도 친근하고 쉽게 풀어낼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SBS 뉴스 웹사이트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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