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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토의 오페라 '마르타' 에 나오는 아리아 '꿈과 같이'. 오페라 자체는 오늘날 거의 공연되지 않지만 이 아리아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사랑받아 종종 따로 불린다. 아버지의 애창곡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음악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집안에 음악 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오페라 아리아를 굉장히 좋아하셨다. 그래서 기분 좋을 때면 오페라 아리아를 한 곡조씩 뽑곤 하셨다. 내가 피아노를 웬만큼 칠 수 있게 된 후부터는 아버지가 부르는 오페라 아리아에 반주를 자주 해드렸다. 그리고 하도 자주 들어서 이 노래 가사를 외우게 되었다. 

언제였던가, 내 어린 시절의 어느 날,  아버지가 가족 동반 동창 아유회에 나를 데려가신 적이 있다. 그 때 '장기자랑' 코너가 있었는데, 나는 아버지와 같이 이 노래를 불러서 상을 탔다. 아마도 모녀가 함께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모습이 신기했을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 노래가 무슨 뜻인지는 전혀 몰랐다. 

그리고 꽤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는 간암 말기로 투병 중이시다. 지금은 병실에 누워서 꼼짝도 못 하시고, 기력이 없어 말도 잘 못 하신다. 얼핏 보기엔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간호사는 그래도 청각은 모든 감각 중에서 가장 끝까지 살아있다며, 계속 좋은 얘기를 해드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드리면 환자가 안정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검색해 이 노래를 찾아 틀었다. 테너 파바로티가 부르는 영상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이후로는 거의 들어본 기억이 없다. '마파리~' 하고 '꿈과 같이'의 첫 소절이 흘러나오자 초점 없이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의 눈동자가 커졌다. 알아들으시는 모양이다. '생각나세요? 예전에 이 노래 같이 불렀던 거?' 했더니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버지와 함께 이 노래를 듣고 있자니 저절로 눈물이 고였다. 이 노래를 즐겨 부르시던 시절, 아버지는 젊고 건강하셨다. 고통스럽게 투병하면서 너무나 수척해진 아버지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아 정말 지난 세월이 '꿈과 같이' 느껴졌다.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 꿈이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 이후 나는 계속 아버지의 병상 옆에서 디제이 노릇을 하고 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노래를 틀어드리는 것이다. '꿈과 같이' 외에도, '팔리아치' 중에 '의상을 입어라' '사랑의 묘약' 중에 '남몰래 흐르는 눈물'. '라보엠' 중 '그대의 찬 손' '토스카' 중에 '별은 빛나건만' 같은 노래들을. 아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면 난 이 노래들을 어떻게 다시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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