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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피아노 한 대에 남자 다섯 명. 그룹 ‘원 디렉션(One Direction)’의 인기곡 ‘What makes you beautiful’이 다섯 명의 다채로운 연주와 경쾌한 편곡으로 다시 태어났다. 바로 미국 유타 주에서 탄생한 5인조 크로스오버 그룹 ‘피아노 가이즈(The Piano Guys)’의 연주다. 피아노 가이즈는 ‘유튜브 센세이션’이다. 이들은 클래식과 팝을 성공적으로 결합한 곡들을 재치있는 뮤직 비디오에 실어 유명세를 얻었다. 이들의 뮤직 비디오 동영상들이 실린 유튜브 채널의 조회수는 1월 10일 현재 2억 천 백만 명을 넘어섰고, 정기구독자도 백 이십만 명을 돌파했다.
‘피아노 가이즈’ 팀원 중에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연주자는 피아니스트 존 슈미트, 첼리스트 스티븐 샵 넬슨 이렇게 두 명이다. 나머지 세 명은 음악/스튜디오 작업 담당인 알 반 데어 비크, 프로듀서/촬영 담당 폴 앤더슨, 촬영/편집 담당 텔 스튜어트다. ‘피아노 가이즈’의 시작은 폴 앤더슨이 유타에서 운영하던 피아노 가게에서 비롯됐다. 이 가게의 이름이 바로 ‘피아노 가이즈’였다.
폴 앤더슨은 자신의 피아노 가게를 색다르게 홍보하기 위해 유타 지역에서 ‘뉴 에이지-클래시컬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린 존 슈미트를 끌어들였다. 앤더슨은 존 슈미트가 등장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그의 피아노 연주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피아니스트 존 슈미트는 자신과 친분이 있던 스티븐 샵 넬슨을 소개했다. 넬슨은 첼로를 마치 타악기처럼 두드리고 현을 뜯는 등 다양한 주법을 시도하며 개성 있는 연주를 들려주는 첼리스트였다.
알 반 데어 비크는 넬슨이 새 집으로 이사하는 걸 도와준 이웃이었다. 그는 음악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집안에서 자라나 여러 악기를 연주했다. 작곡. 편곡 실력도 갖추고 노래도 곧잘 하는 재주꾼이었다. 텔 스튜어트는 폴 앤더슨의 가게에서 피아노를 나르던 직원이었는데, 영상 촬영과 편집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남자 다섯 명이 모여 함께 만든 ‘피아노 가이즈’의 뮤직 비디오는 클래식 음악과 타 장르의 크로스오버에 기발한 발상을 결합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결혼식 연주를 하던 첼리스트가 꾸벅꾸벅 졸면서 연주하다 신부가 입장하는 순간 엉뚱한 음을 켜버리고 당황하는 상황에서 시작되는 파헬벨의 ‘캐논’ 뮤직 비디오, 첼로 연주자 두 명(사실은 스티븐 샵 넬슨 한 사람이 연기한 것이지만)이 ‘광선 활’을 들고 서로 첼로 연주 솜씨를 겨루며 ‘스타 워즈’의 광선검 결투 장면을 패러디한 ‘첼로 워즈’ 뮤직 비디오 같은 걸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피아노 가이즈의 뮤직 비디오는 동영상을 누구나 퍼나를 수 있도록 개방한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널리 퍼져나갔다. 피아노 가게를 홍보하기 위한 아마추어들의 동영상 프로젝트가 갈수록 커지자, 폴 앤더슨은 급기야 2011년말에 가게를 닫고, 본격적으로 ‘피아노 가이즈’ 프로듀서로 나섰다. 2012년 10월, ‘피아노 가이즈’는 소니와 계약을 맺고 음반을 발매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뮤직 비디오를 만들어 올리고 있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제자인 스테판 하우저와 루토슬라브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루카 쉴릭, 이 두 첼리스트로 구성된 ‘2 첼로스(2 CELLOS)’ 역시 유튜브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다. 이들은 마이클 잭슨의 ‘스무드 크리미널(Smooth Criminal)’을 연주한 뮤직 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리자마자 100만 조회 수를 가뿐히 뛰어넘으면서 음반사의 눈에 띄었고 음반도 내놨다. 클래식에서 갈고 닦은 연주 솜씨에 록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가미한 크로스 오버다. 이들은 이제 엘튼 존과 함께 공연하는 스타가 되었다.
EMI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음반으로 데뷔하며 화제가 됐던 피아니스트 임현정도 유튜브에서 먼저 입소문을 탔다. 임현정은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연주회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고, 이 중 앙코르 곡이었던 ‘왕벌의 비행’의 현란한 연주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왕벌의 비행’으로 유명해지면서 주목받은 것이다. 임현정은 ‘유튜브가 클래식 음악의 ‘민주화’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한다. 임현정의 말대로, ‘좋아하는 연주자가 외국에 있어도, 연주회를 보러 갈 돈이 없어도, 유튜브 덕분에 내 방에 앉아서 연주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얼마 전 내한공연을 열었던 ‘앤더슨 앤 로(Anderson & Roe) 듀오’ 역시 감각적인 뮤직 비디오가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었다. ‘앤더슨 앤 로 듀오’는 줄리어드 음악원 동창인 그렉 앤더슨과 한국계인 엘리자베스 조이 로, 이렇게 두 명의 피아니스트로 구성됐다. 이들은 네 손을 위한 개성 있는 편곡과 연주로 기존의 곡을 재창조하고, 이를 직접 제작한 뮤직 비디오에 담았다.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를 연주한 뮤직비디오를 보면, 이 두 사람의 연주 모습은 마치 실제로 탱고 춤을 추는 연인처럼 관능적인 매력을 풍긴다. 슈베르트의 ‘마왕’ 뮤직 비디오는 슈타인웨이 피아노 공장을 배경으로, ‘마왕’인 피아노에 말 그대로 ‘잡아먹히는’ 두 연주자의 모습이 긴박하게 그려졌다. 마치 공포 영화의 예고편 같은 인상적인 뮤직 비디오다.
가수 싸이가 ‘강남 스타일’ 뮤직 비디오 하나를 발판으로 ‘국제 가수’가 되면서 유튜브의 파급력을 생생하게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렇게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한 크로스오버나 ‘정통’ 클래식 연주자들 중에도 ‘유튜브 스타’는 드물지 않다. 유튜브는 과거의 신인 발굴 경로와 홍보를 송두리째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과거 클래식 음악계의 신인 발굴은 대개 음악계 관련자의 추천을 받거나, 콩쿠르에서 입상한 연주자들 중에서 이뤄졌다. 메이저 음반사들은 이렇게 발굴한 신인들의 음반을 내고, 뮤직 비디오를 찍어 홍보에 활용했다. 그런데 요즘은 연주자들이 먼저 자신들의 연주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 이 중 입소문이 나고 화제가 되는 연주자들이 등장한다. 그러면 이들을 음반사들이 발탁하고 음반을 내는 것이다. 과정이 거꾸로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동영상’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예전에도 ‘뮤직 비디오’는 있었지만, 이는 홍보의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했다. 뮤직 비디오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이를 즐길 수 있는 통로는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유튜브 같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 덕분에 재미있는 뮤직 비디오들이 퍼나르기를 통해 짧은 시간 안에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이동 통신의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빨라지면서 모바일로 언제 어디서나 이런 동영상을 즐길 수 있다. 꼭 전문가가 만든 뮤직 비디오가 아니라도 된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웹과 모바일의 발달은 전통적인 음악 산업에는 커다란 위협이 된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와 함께 온다는 것 역시 진부하게 들리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요즘 음반사 기획자들은 유튜브를 뒤지며 신인을 찾는다. 웹과 모바일에서 뮤직 비디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새로운 경로로 새로운 스타가 속속 탄생하고 있다.
‘강남스타일’의 성공 사례가 웅변하듯, 재미난 뮤직 비디오 한 편이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한다. 비교적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이런 변화가 본질을 흐린다며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좋든 싫든 이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유튜브’는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대중’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창구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튜브’로 대표되는 이 변화를 외면한 채 대중에게 다가갈 효과적인 통로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 이 글은 '클럽 발코니' 매거진 1-2월호에 기고했고, SBS 뉴스 웹사이트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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