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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나는 유튜브에서 스타가 되어 EMI 클래식스에서 데뷔 음반을 낸 피아니스트 임현정(HJ Lim) 씨 관련 기사를 8시 뉴스와 다음날 아침 뉴스에서 보도했다. 그런데 이틀 뒤, 트위터에서 '임현정, 유튜브가 만든 피아니스트 스타'라는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확인해 봤더니 한 인터넷 매체에서 쓴 기사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내 기사에서 인터뷰 부분만 빼고 '~습니다'를 '~다'로만 바꾸고 베껴쓴 것이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내 글이 출처를 제대로 안 밝힌 채 돌아다니는 걸 발견한 적이 과거에도 몇 차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경우는 정말 심했다. 남의 기사를 그대로 베낀 기사를 버젓이 그 매체 기자 이름으로 올려놓다니. 당장 화가 나서 직접 그 기자에게 항의를 할까 하다가, 회사 법무팀을 통해 공식적으로 기사를 내리고 재발 방지를 서면으로 약속해 줄 것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그 매체 웹사이트에 '인기기사'로 올라있던 이 기사는 공식 항의 사흘 후 삭제되었다. 이 회사에서는 편집인 명의로 우리 회사 법무팀에 보낸 답신을 통해 '그 기사는 귀사의 기사를 보고 작성한 것이 확인됐다'며 '기사는 즉시 삭제했으며, 담당 기자에게 강력한 경고를 했고 재발 방지를 약속받았다'며 '편집인으로서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점을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 건에 대해서는 이렇게 마무리가 된 셈인데, 기분이 개운하지는 않다. 과연 다른 기사들은 멀쩡한 것일까. 이 매체 기자들이 직접 취재하고 작성한 것일까. 기사를 모두 다 읽어본 건 아니지만,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이 회사에서 보내온 공문은 언론사 편집인 명의의 공문이라기엔 민망할 정도로 오자가 많고 허술했다. 

요즘 취재 현장에 나가보면 정말 이상한 기자들 많다. 내가 요즘 기자회견이나 프레스콜에 점점 가기 싫어지는 큰 이유 중 하나다. 취재원들 얘기 들어보면 이 중에 제대로 기사 쓰는 기자들은 몇 안 된다고 한다. 보도자료 그대로 긁어다 기사라고 올려놓고는(공연 홍보 담당자 전화번호까지 그대로) 표 내놓으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언론사 기자를 사칭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기자라는 직업, 이름 걸고 글 쓰는 직업이다. 내가 쓰는 방송 리포트 기사, 길어봤자 1분 반에서 2분, 문장 몇 개와 인터뷰 몇 개로 끝나지만, 이 기사 하나에 이름 걸고 보도하는 기자의 취재 노력이 집약돼 있다. 그런데 
카피 앤 페이스트로 뚝딱 기사 한 건, 사진 한장에 섹시한 캡션으로 또 뚝딱 기사 한 건. 기사의 '질'과는 관계없이 '인터넷 세상'에서는 '공평하게도' 모든 기사가 다 'n분의 1'일 뿐이다. 제목 장사에 글도둑질까지, 기사의 무게는 한없이 가볍고 가벼워진다. '기자'라는 직업의 무게도 한없이 가볍고 가벼워진다.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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