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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내한공연(2011) *빈체로 제공


휴대전화가 온 국민의 필수품이 돼버린 요즘이지만, 휴대전화 벨소리가 짜증을 돋굴 때도 적지 않습니다. 얼마 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중인 연극 대학살의 신을 보는데, 중간에 시끄러운 벨소리가 울려서 깜짝 놀랐어요. 알고 보니 객석이 아니라 무대에서 울린 것이었습니다. 극중 인물이 전화를 받는 장면이었어요.    

 

이 연극은 아이들이 싸운 후에 가해 아동 부모와 피해 아동 부모가 만나 벌이는 대화가 막장 싸움으로 치닫는 과정을 아주 실감 나게 보여주는데요, 극중에서 변호사인 가해 아동의 아버지는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붙들고 업무를 처리하죠. 극중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그의 휴대전화 벨소리는 부드럽게 이어지던 대화 분위기를 미묘하게 바꿔 가시 돋친 설전으로 치닫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저도 연극을 보면서 이 남자의 전화가 울리기만하면 저절로 , 뭐야또야?’ 이렇게 반응하게 되더라고요.    

 

대학살의 신에서는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는 게 극중 상황이었지만, 실제로 공연 도중 객석에서 벨소리가 나면 참 짜증스럽습니다. 공연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방해를 받게 되는 겁니다. 며칠 전 BBC를 비롯한 해외 언론이 일제히 보도한 유튜브 영상도 공연 도중 객석에서 전화벨이 울리는 상황을 포착한 것이었는데요,연주자의 재치 있는 대응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영상은 슬로바키아 출신의 비올리스트 루카시 크미티의 연주 실황입니다. 이 영상이 올려진 시점은 지난해 여름으로 돼 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최근 며칠 사이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교회에서 열린 공연. 고요하게 울려 퍼지는 비올라 독주 선율 사이로 갑자기 휴대전화 벨소리가 끼어듭니다. 참 듣기 거슬립니다. 연주자가 멈칫 합니다. 전화벨은 꺼지지 않고 또다시 울립니다. 이번엔 소리가 더 커졌습니다. 참 난감하고 짜증스러운 상황이지요. 연주자는 다시 연주를 시작하는데, 뜻밖에도 이 전화벨 멜로디가 연주됩니다. 전화벨 멜로디 즉흥연주를 한 셈입니다. 비올리스트는 미소를 지으며 연주를 마쳤습니다. 전화벨소리에 나름의 방식으로 유쾌하게 대응한 이 비올리스트를 향해 큰 박수가 터져 나온 건 물론입니다.

  

(제가 이 영상을 보도한 후에, 독자 한 분이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씨도 악장 중간에 유모레스크 벨소리가 터져나오자 유모레스크 멜로디를 즉석에서 연주한 적이 있다는 일화를 전해주셨습니다.)  

 

이 공연에 등장한 벨소리는 저에게 영화 러브 액추얼리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 영화엔 남자친구와 로맨틱한 무드에 젖으려 할 때마다 전화가 와서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사라라는 여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래 사진 속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입니다.)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하나뿐인 가족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라 받지 않을 수도 없지요. 영화를 보면서도 사라의 전화가 울릴 때마다 가슴이 졸아드는 것 같았어요. 바로 노키아 기종의 벨소리입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한 스페인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타레가의 곡 'Gran Vals'에서 선율을 따왔습니다.   

 

영화 '러브 액추얼리'. 로맨틱한 순간을 깨는 전화통화


바로 이 노키아 벨소리를 주제로 삼은 노키아 즉흥환상곡이란 곡도 있습니다. 미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앤드류 골드만이 자신의 공연에서 앙코르로 연주했습니다. 이 공연 영상은 역시 유튜브에 올려져 있는데요, 곡의 후반부에는 연주자가 연주 도중 걸려온 전화를 받는 퍼포먼스도 연출합니다.객석의 누군가가 전화를 건 것 같습니다. “앤드류, 지금 전화 받을 수 있어?” “, 안돼, 나 지금 해결할 일이 있거든전화를 끊고 연주를 계속하는 피아니스트. 객석에서는 그야말로 폭소가 터져나옵니다.

노키아 즉흥환상곡 동영상 링크: http://www.youtube.com/watch?v=4zUqeCi5-fE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도 2006, 그 유명한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에서 지휘 도중 걸려온 전화를 받는 장면을 연출한 적이 있습니다. 전화벨을 끄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연기해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죠. 이렇게 전화벨 소리는 음악가들이 벌이는 퍼포먼스의 소재로 사용됩니다. 이는 유쾌한 퍼포먼스로 받아들여지지만, 한편으로는 연주를 방해하는 객석의 전화벨 소리를 패러디해 꼬집는 의미도 있겠지요.


실제로 공연 도중 울리는 전화 벨소리는 웃고 넘길 해프닝이 아니라,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지난 10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에이버리 피셔 홀에서 말러의 교향곡 9번을 연주하다가 전화벨 소리 때문에 연주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일어났습니다. 아이폰의 마림바 벨소리였지요. 휴대전화 벨소리 때문에 연주 중단까지 이른 건 뉴욕 필 역사상 처음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전화의 주인은 뉴욕 필의 오랜 후원자이며 관객이었다고 합니다. 이전까지 쓰던 블랙베리 대신 지급받은 아이폰의 사용법을 잘 몰라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네요. 그는 공연 전에 벨소리를 무음 모드로 바꿨지만, 알람은 그래도 울린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벨소리가 날 때도 한동안 자신의 전화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데다, 알람을 어떻게 해제하는지도 몰라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지요. 그러니 공연 볼 때는 휴대전화 벨소리만 꺼놓지 말고 각종 알림음도 울리지 않도록 미리 조작해 놓아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게 복잡하고 힘들면 아예 전원을 끄는 게 상책일 듯합니다.  

 

지난해 국내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였지요. 1층 객석에서 전화 벨소리가 무려 1분 가까이 울렸던 겁니다. 마침 조용한 대목을 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벨소리는 엄청나게 신경을 거스르는 큰 소리였습니다. 단원들이 정말 이대로는 연주를 계속할 수 없겠다고 생각한 순간, 벨소리가 겨우 멎었습니다.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는 공연 직후 벨소리에 영향을 받았다며 불만을 표시했고, 오케스트라는 공식적으로 기획사에 항의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기획사는 이 오케스트라의 다음 번 내한공연을 추진하고 있는데, ‘전화벨 사태의 부정적인 영향이 커서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하지요.

 

저는 이 공연을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공연을 본 지인들은 전화벨소리가 거의 테러에 가까웠다며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공연장에 전파 차단 장치를 설치해 달라는 요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일본 최고의 콘서트홀로 꼽히는 산토리 홀은 휴대전화 전파 차단 장치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사실 국내에서도 전파 차단 장치는 2000년대 초에 주요 공연장에서 설치해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타인의 소통을 방해하는 행위나 송수신 방해행위를 금지하는전기통신사업법에 위배돼 사용을 중단한 상탭니다.  


저는 공연 중 휴대전화 벨소리 문제에 관한 기사를 오래 전부터 쓰고 싶었습니다만 방송뉴스는 화면이 필요해서 쉽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사건 때도 전파 차단장치 설치 문제까지 열심히 취재는 했습니다만, 결정적으로 공연 동영상이 없어 포기하고 말았지요. 그러다 이번 설 연휴 마지막 날, 한 트친(트위터 친구의 준말이라는 거 아시죠?)이 리트윗한 루카시 크미티 공연 동영상을 접하고, 이를 계기로 이번엔 꼭 기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는 전화벨 즉흥연주 동영상으로 시작했지만, 사실은 '공연 도중에는 꼭 휴대전화 전원을 끕시다'를 강조하는 기사를 쓴 셈입니다. (1월 25일 SBS 8시뉴스 기사 링크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073650)

 

부끄럽지만 여기서 고백하자면 저도 전화벨소리 내는 무지몽매한 관객이 된 적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바꾼 지 얼마 안 돼 대학로 소극장 연극을 보러 갔을 때였죠. 공연직전 분명히 전화를 꺼놨다고 생각했는데, 한창 공연 보는 도중에 벨이 울려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미친 터치때문이었을까요. 재빨리 끄기는 했지만,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그 뒤부터는 제대로 공연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문화부는 다른 부서에 비해 좀 덜하기는 합니다만 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항상 스탠드바이상태를 요구하는 것이라서, 공연을 볼 때 전원을 완전히 꺼놓기는 좀 불안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에는 공연 볼 때 아예 휴대전화 배터리를 다 빼놓아야 안심이 됩니다. 대신 쉬는 시간에는 꼭 전화기를 다시 켜서 혹시 그 동안 연락 온 게 없었나 확인하지요

 

최근에는 스마트폰 사용이 늘면서 공연 도중에도 전화를 끄지 않고 트위터나 카톡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요, 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관객들도 많습니다. 최근 신시내티 심포니오케스트라 같은 미국의 유명 예술단체들이 SNS에 익숙한 젊은 관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공연 보면서 트윗을 할 수 있는 트윗 좌석을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고는 합니다만, 휴대전화 액정 화면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주변 관객들에게 상당히 방해가 되는 게 사실입니다. 저도 제 옆자리에 그런 관객이 앉은 적이 있는데, 많이 거슬리더라고요.

 

휴대전화 에티켓 문제는 관객들에게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공연 주최측도 효과적으로 관객들의 주의를 환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해외 공연장에서는 공연 직전 시끄러운 휴대전화 벨소리를 직접 들려주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결국은 관객들의 자발적인 실천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저는 공연 관람이, 일상에서 벗어나 무대 위의 예술가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특별한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만큼은 휴대전화의 족쇄를 벗어 던지고 공연에 마음껏 몰입하는 게 우선 아닐까요? 그러니 공연을 볼 때만큼은 휴대전화를 잠시 꺼두시는게 좋겠습니다. 설마 연주자들의 벨소리 멜로디 즉흥 연주를 듣기 위해 휴대전화를 켜두겠다는 분들은 없으시겠지요?


*SBS 뉴스 웹사이트 취재파일로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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