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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을 만났다. 그의 연주를 본 건 처음이 아니지만,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리처드 용재 오닐을 세종 솔로이스츠 단원으로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의 남다른 가족사를 몇 년 전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 콜린 오닐(한국명 이복순)은 전쟁고아로 네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어머니는 어릴 때 열병을 앓아 정신지체가 되었고, 미혼모로 그를 낳았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미국인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어릴 때 외할머니가 사준 바이올린 덕분에 음악의 세계에 눈을 뜬 리처드 용재 오닐은 비올라 전공으로 줄리아드 음악원에 입학한다. 이 곳에서 그는 세종 솔로이스츠를 만든 강효 교수를 만나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각하고, ‘용재라는 한국 이름을 새로 얻었다.

 

나는 이번 인터뷰에서 리처드 용재 오닐이 활동하고 있는 실내악 그룹 앙상블 디토얘기만 할 작정이었다. 인터뷰는 디토 페스티벌 2011’ 개막 즈음인 지난달 24일 이뤄졌다. 디토 페스티벌은 앙상블 디토를 중심으로 젊은 게스트 음악가들을 초청해 열리는 음악축제다. 올해 디토 페스티벌은 앙상블 디토 외에도 파커 콰르텟, 하피스트 자비에르 드 매스트르, 바이올리니스트 한빈과 신현수, 디토의 전 멤버였던 자니 리, 피아니스트 임동혁 등이 참여해 성황리에 진행됐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2007년 결성된 앙상블 디토의 중심 인물이며, 디토 페스티벌의 음악 감독이다. 앙상블 디토는 결성 이후 몇몇 멤버가 교체되긴 했지만, 젊은 한국계 혹은 친한파 외국인 남성 연주자들로 구성됐다는 점은 바뀌지 않았다. 현재 멤버는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 마이클 니콜라스(첼로), 고 피천득 선생의 외손자로도 알려진 스테판 피 재키브(바이올린), 지용(피아노), 이렇게 네 명이다. 실내악은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대중성이 떨어지는 분야지만, 앙상블 디토는 결성 이후 공연이 잇따라 매진을 기록했고, 멤버들은 광고 모델까지 됐을 정도로 인기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있는 게 사실이죠. 늙은 관객, 늙은 음악가. 이렇게 오래된 것, 과거의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그래서 디토는 더 특별해요. 무대도 젊고 객석도 젊어서 시너지 효과를 내요. 관객의 열기나 에너지가 대단해요. 연주자들도 모두 젊고 서로를 잘 알지요. 아주 독특한 경우예요.”

 

그는 실내악을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가장 정련된 형식의 음악이라고 본다. 실내악 관객들은 클래식 음악 관객 중에서 더욱 연령대가 높은 게 일반적이란다. 그러니 앙상블 디토의 공연에 이렇게 젊고 열광적인 관객들이 많이 모여드는 게 놀라운 일이라는 것이다. 리처드 용재 오닐의 말에 따르면, “디토는 관객을 콘서트홀에 끌어들이기 위해 비정통적(unorthodox)’인 방식을 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족들과, 친구들과 음악회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해 보세요. 시간만큼 귀중한 게 있나요. 저는 관객의 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해요. 게다가 공연이 열리는 저녁은 정말 황금시간이잖아요. 고급스럽고, 비싸 보이고, 이런 식으로 전통적인 음악회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따른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겁을 줄 것 같아요. ‘우리가 이런 데 돈 쓰고 시간 들여 가야 하나이렇게 생각할 사람이 많을 거예요. 

 

이 장벽을 깨야 합니다. 클래식 음악회에 안 그래도 오는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건 하지 말자, 새로운 관객을 만들어보자, 이거죠.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흥미를 느끼게 하는 건 쉽지 않아요. 그냥 해오던 대로만 한다면 계속 똑같은 사람들만 음악회에 오게 될 거예요.”

 

전통적인 음악회에서 음악가들은 보통 검은색 연주복을 차려 입는다. 하지만 앙상블 디토 멤버들은 개성 있는 캐주얼 차림이다. 특히 피아니스트 지용은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이름나 있다. 치렁치렁 장신구를 하는 것도, 튀는 색깔의 운동화를 신는 것도, 가죽 바지를 입는 것도, 지용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른 예술장르와 협업도 빈번히 이뤄진다. 지난해 디토 페스티벌에서는, 홀스트의 관현악 모음곡 행성을 연주할 때 무대 전체에 우주의 모습을 영상으로 구현했다. 미디어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한 결과다. 디토 멤버는 아니지만, 이번 디토 페스티벌에 초청돼 함께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 한빈은 죽음의 무도를 연주하며 충격적이기까지 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고 한다. 행위예술을 한바탕 무대 위에 구현한 한빈은 스스로를 음악가라기보다는 바이올린 퍼포먼서로 일컬었다 한다.  

   

앙상블 디토는 팬들과 만나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디토 페스티벌 개막을 앞둔 오프닝 나잇행사에는 팬 400여 명을 초청했다. 행사 중간중간에 연주도 했지만, 뮤직 비디오 상영과 가벼운 토크, 퀴즈쇼 등 이벤트를 곁들였다. 객석에 있던 팬들 중 몇 명이 자원해 참여한 퀴즈쇼는 앙상블 디토에 관한 퀴즈를 푸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팬들은 입장하기 전에 행사장 밖에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에게 궁금한 점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였고, 진행자는 이를 멤버들에게 전달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피아니스트 지용에게)한국에 오면 항상 하는 일이 있나요?”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머리부터 해요!”

 

오프닝 나잇 행사 내내 객석은 깔깔대는 웃음소리와 환호성으로 가득했다. 행사가 끝나고 열린 팬 사인회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과거 사인회 영상을 보니, 열성 팬들은 멤버들을 껴안으며 애정을 표시하기도 하던데, 이런 풍경이 그리 어색해 뵈지 않는다. 앙상블 디토는 포토 에세이도 냈다. 요즘 말로 하면 네 남자들의 샤방샤방한 사진과 짧은 글들이 어울린 화보집이다.

 

앙상블 디토의 뮤직 비디오(위의 영상) 역시 샤방샤방하다. 뉴욕의 아침, 잠에서 깬 네 남자들이 기지개를 켜고, 세수하고, 면도하고, 옷을 차려 입고, 모닝 커피를 마시고, 스튜디오로 달려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뮤직 비디오 얘기를 꺼냈더니 리처드 용재 오닐은 크게 웃었다.

 

 뮤직 비디오는 현실과는 달라요. 저는 메이크업 한 채로 자지 않고, 일어날 때 머리가 그렇게 단정하지도 않지요(웃음). 우리는 이야기에 목말라 있어요. 내러티브를 좋아하지요. 돌이켜보면 많은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통해서 저를 알게 됐어요. 저의 이야기, 저의 어머니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요. 뮤직 비디오도 다르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짧은 영상으로 관심을 끄는 거죠. 보는 사람들이, 뭔가 나한테 말을 거는구나, 이렇게 느낄 수 있도록 말이지요.” 

*너무 길어져서 두 편으로 나눴습니다. 이 글은 SBS 인터넷 뉴스파일로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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