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첼리스트 요요마를 처음 만났다. 그는 파리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으로, 그래미상 18회 수상, 누적음반 판매량 천만 장 기록을 보유한 세계적인 첼리스트다. 요요마는 지난해부터 전세계 6개 대륙 36개 도시에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연주하는 바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나는 이 프로젝트의 20번째 기착지로 한국에 온 요요마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9 6일로 인터뷰 일정이 정해지고 나서, 요요마 공연 기획사측에서 내 이력서를 달라고 했다.

 
왜요?”
 
모르겠어요. 요요마 매니지먼트 쪽에서 알고 싶다고 하네요. 참고하려는 거겠죠 뭐.”
 
간단하게 정리한 이력서를 보내줬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담당자한테 연락이 왔다.

 
예전에 요요마를 만난 적이 있으세요?”
 
요요마 공연을 두 번 본 적은 있는데, 인터뷰한 적은 없어요. 왜요?”
 
요요마 매니지먼트 쪽에서 확인하고 싶다고 해서요.”

9 6일 낮, 바로 그날 아침 서울에 도착한 요요마가 인터뷰를 위해 약속 장소로 왔다. 만나서 반갑다, 나는 누구다, 첫 인사를 나눴다. 일반적인 인터뷰라면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을 텐데, 요요마는 달랐다. 이어진 요요마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얘기 많이 들었어요. 피아노 치는 게 취미라면서요?”
 
, ,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는데, 지금도 좋아서 그냥 가끔 치고 있어요. “
 
대단해요. 직업을 갖고서도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해온 거잖아요. 음악을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악기 연주까지 하면 정말 좋은 일이죠. 계속 해봐요. 음악이 삶에 활력이 되잖아요?”
 
 
얼떨떨했다. 만나자마자 요요마에게 격려내지는 칭찬을 들었으니. 하지만 내가 취미로 피아노를 친다는 사실을 요요마가 어떻게 알았을까. 이력서에 그런 얘기는 없는데. 예상 못한 일격에 기분 좋게 허를 찔린 것 같았다. 기획사 담당 직원이, 요요마가 궁금해 해서 나에 관한 얘기를 좀 해줬다고 설명해줬다.    

 
인터뷰를 위해 세팅된 의자에 앉아서도 요요마의 인터뷰 본론은 시작되지 않았다. TED 얘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내 이력 중에 TED 컨퍼런스를 취재해서 쓴 책 얘기를 봤을 거라고 짐작했다. 요요마가 먼저 물어왔다.

  “TED
는 언제 참석했었어요?”
  “2010
년에요.”

  “밴쿠버로 갔나요?’

  “아뇨. 제가 갔을 때는 롱비치에서 열렸어요. 그 몇 년 뒤에 밴쿠버로 옮겨갔고요.”

  “크리스 앤더슨(현재 TED의 큐레이터)이 인수하고 난 후였겠네요. 크리스 앤더슨이 TED를 하기 시작한 게 언제였죠?”
  “
아마 2천 몇 년이었을 거에요. 요요마 씨도 TED에 참석한 적 있으시죠?”
  “
. 이전에 리처드 솔 워먼(TED의 창립자)TED를 개최할 때 여러 번 참석했죠. 지금은 포맷이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당신 말처럼 천재들의 유엔이라는 컨셉이 정말 흥미로워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더라고요.”

 
요요마가 내가 쓴 책의 제목인 <천재들의 유엔 TED>를 정확하게 언급할 줄은 몰랐다. TED 이야기는 한동안 더 계속되어 내가 TED에 참석했을 때 주요 연사였던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 얘기로 이어졌다. 어린이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자는 요지로 했던 그의 강연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더니 요요마는 자기도 기억난다며 정말 좋은 캠페인이었다고 맞장구 쳤다. 그러더니 제이미 올리버의 영국 내 레스토랑 사업이 파산했다는 최근의 뉴스를 듣고 놀랐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나와 요요마는 요리사로서 창의적인 일을 하는 것과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일인 것 같다는 데 공감했다.


본격적인 인터뷰 질문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이미 많은 이야기를 요요마와 나눴고, 친근감을 느꼈다. 이어진 인터뷰는 유쾌하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그래서 내 이력을 미리 달라고 했었구나. 친화력이 대단한 사람이구나. 나중에 들으니 요요마는 지난해 한국 기자들과 단체 인터뷰하는 자리에서는 이렇게 얘기했다 한다. 

 
여러분은 나에 대해 알고 왔는데 나는 여러분을 잘 모르잖아요. 좋은 대화를 하려면 서로를   알아야죠. 각자 소개 좀 해주실래요?”


그래서 요요마를 만나러 온 기자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자기 소개를 돌아가면서 하게 되었다고 한다. 요요마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일화다.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지만 이렇게 나를 인터뷰하는 기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궁금해 하는 아티스트는 별로 만난 적이 없다. 그는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시간 제한만 없다면,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눴어도 이야깃거리가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요요마의 바흐 프로젝트역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 바흐 프로젝트의 기본 프로그램은 첼로 음악의 바이블로 불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다. 왜 바흐인가?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위로와 평화의 음악이다. 이 음악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곳에, 9.11 테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자리에서도 울려퍼졌었다. 요요마는 바흐의 음악으로 청중과 소통하고, 마음을 모으고,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고 싶어한다.   

 
바흐에게는 대단한 능력이 있었어요. 나는 그는 과학자 작곡가(Scientist Composer)였다고 생각해요. 그에게는 작품 속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두 가지 특징이 있어요. 하나는 그가 당신이 누구이고 뭘 느끼는지 완전히 공감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또 하나는 당신이 누구이며 뭘 느끼는지 아주 객관적으로 본다는 거고요.
 
바흐는 당신이 좋아하는 삼촌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자랄 때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나면 언제든 삼촌을 찾아가요. 왜냐하면 삼촌은 항상 내 얘기를 잘 들어줄 거니까. 삼촌은 내 얘기를 다정하게 들어주고 공감해 줄 거예요.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해 보자하면서 객관적인 시각도 제시해 줄 거에요. 
 
바흐는 뭔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끌어당겨요. 소중한 걸 잃었거나 도움이 필요하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은 바흐에게 의지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바흐는 당신을 진정시키고, 희망을 줄 수 있으니까요.”
 
 
요요마는 바흐의 음악이 인간의 감성에도, 이성에도, 강한 호소력을 가진다는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낸 것 같았다. ‘엉클 바흐라니! 재미있는 비유였다. 바흐 프로젝트 중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회는 대부분 야외에서 열렸다. 요요마는 공연 중 휴식 시간도 없이, 첼로 한 대로, 많게는 수만 명의 관객이 지켜보는 무대를 150분 동안 책임진다. 한국에서도 원래 올림픽 공원 야외무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태풍으로 갑작스럽게 체조경기장으로 변경되었다. 6천여명의 관객이 그의 연주를 지켜봤다.

 
요요마는 연주를 시작한 지 얼마 안돼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여유롭게 연주를 이어갔다. 대가의 연륜이 느껴졌다. 그는 곡 사이에 주머니에서 메모를 꺼내 읽으면서 관객들에게 한국어로 이야기를 전했다. 아마 하고 싶은 말을 한국어로는 어떻게 하는지 알파벳으로 써달라고 해서 읽은 듯하다. 서투른 발음이었지만 알아듣기에는 충분했고, 진심이 느껴졌다. 그는 전곡 연주를 마친 뒤, 앙코르 곡을 연주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새들의 노래를 여러분들께 바치고 싶습니다. 저의 영웅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가장 좋아한 민요입니다. 새는 자유를 상징합니다. 날아다닐 자유, 그래서 국경을 넘나들 수 있죠.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행동하고 그리고 기억할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추석 잘 보내세요!”

 
요요마는 이 연주회 다음날을 행동의 날로 정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행동의 날을 정해 그 지역 사람들과 소통하는 특별한 일정을 진행한다. 이번에는 DMZ 안에 있는 도라산 역에서, 한국 연주자들과 함께 평화 음악회에 참가했다. 바흐도 들려줬지만, 젊은 한국인 연주자들과 함께 가곡 그리운 금강산도 들려줬고, 김덕수, 안숙선, 임동창 등 국악의 명인들과 어우러져 아리랑을 신명 나게 연주했다.

 
요요마는 남북의 경계에서 연주하는 게 평생의 꿈이었다고 했다. 그는 문화는 장벽이 아니라 다리를 놓는 것이라며 문화 안에서 함께 꿈을 꾸자고 했다. 북으로 가는 관문인 도라산역에서 군사분계선은 지척이다. 철마가 잠시 멈춰선 곳, 남북의 철도가 끊긴 곳, 남북이 갈라진 경계 지대에서, 요요마와 한국 음악가들은 음악으로 세상을 잇고 사람들을 연결했다. ‘평양 방면이 선명하게 쓰여진 도라산역 풍경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요요마는 이전에도 경계 지대에서 연주했다. 그는 올해 5월 미국과 텍사스 국경 도시에서 연주하며 국경에 장벽을 쌓는 트럼프의 난민정책에 대해 확실히 반대의 뜻을 밝혔다. 한국에 오기 직전 레바논에서는 1975년 내전이 시작된 곳이며 베이루트 동(기독교)과 서(모슬렘)를 가르는 경계 그린 라인에서 연주했다. ‘문화는 장벽을 쌓지 않고 다리를 짓는다. 음악은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설파했다.

 
요요마는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DMZ 평화 음악회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근처의 대성 초등학교를 방문해, 어린이들과 함께 꿈꾸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서 함께 꿈꾸기: K팝의 미래와 문화기술를 주제로 열린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SM엔터테인먼트 이성수 본부장, 동아일보 대중음악담당 임희윤 기자와 대담하고, 연주도 했다. 연주곡은 드라마 호텔 델루나삽인곡인 그대라는 시였다. 불과 하루 전에 악보를 건네받아 연습했다 한다.

 
그가 호기심이 없었다면,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이 없었다면 이런 프로젝트가 가능했을까. 클래식 음악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장르와 협업에 적극적인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각 나라의 전통 악기 연주자와 작곡가들을 모아 1998년 월드뮤직 단체인 실크로드 앙상블을 설립했다. 첼로나 바이올린 같은 클래식 악기들에 장구 같은 각국의 전통 악기들이 한 무대에서 어우러진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각기 다른 문화들이 만나 접점을 찾는 독특한 무대다. ‘'돈 워리, 비 해피(Don't worry, Be happy)'로 유명한 바비 맥퍼린, 영화음악 작곡가 엔니오 모리꼬네하고 협업하기도 했다.

 
나는 올해 63살의 요요마에게서 샘솟는 호기심, 유연하고 열린 사고,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는 소망을 보았다. 세계적인 첼리스트지만 아저씨처럼, 삼촌처럼, 친구처럼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중국계인 요요마는 성이 마()이고 이름이 요요(友友). 이름부터 친구()’인 셈이다. 요요마는 엉클 바흐를 이야기했지만, 나는 요요마를 엉클 마, 부르고 싶어졌다. ‘엉클 마가 한국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나는 벌써부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SBS 뉴스 웹사이트에 취재파일로 송고했습니다.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