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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서울디지털포럼이 오늘 개막됐다. 2009년과 2010년 서울디지털포럼을 기획하는 부서에서 일했던 나로서는, 비록 지금은 문화부에서 일하고 있지만,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 잠깐 '취재'를 위해 포럼을 다녀왔다. 바로 에릭 휘태커. 내가 블로그와 트위터에서 이미 소개했던 '버추얼 콰이어(가상 합창단)'의 지휘자이자 작곡가를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에릭 휘태커의 올해 TED 토크를 보자마자 이 사람을 서울디지털포럼에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울디지털포럼은 매년 예술가들을 초청해 세션을 꾸려온 데다, 전세계 곳곳에 흩어진 2,000여 명을 웹으로 연결해 '가상 합창단'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낸 에릭 휘태커는 올해 포럼의 주제인 'Connected'와 안성마춤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이 잘 되느라고 서울디지털포럼 기획 부서에서도 에릭 휘태커의 TED토크를 굉장히 좋아했고, 초청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에릭 휘태커는 미국에서는 굉장히 유명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실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의 이번 내한을 계기로 그의 음반이 라이센스로 발매됐고, 서울디지털포럼 관련 기사를 통해 그의 작업이 소개되고 있어, 맨 처음 그를 한국에 불러오자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으로서 조금은 뿌듯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 인터뷰도 굉장히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인터뷰 내용은 조만간 올릴 예정이다.)

에릭 휘태커의 세션은 오늘 오후에 잡혀 있었다. 나는 인터뷰를 마치고 이 세션도 봤는데, TED 강연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으나 그의 버추얼 콰이어 세번째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발표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그런데 문제는 진행 도중 몇 차례 차질이 빚어졌다는 사실이다. 그의 발표에서는 동영상 상영이 여러 번 이뤄졌는데, 동영상 순서가 잘못 나가기도 했고, 동영상의 화면은 안 나오고 소리만 나오기도 했다. 에릭 휘태커는 노련하게 발표를 이어가긴 했는데, 아무래도 흐름이 끊겨 발표의 효과가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청중석에 앉아있었지만, 맨 처음 동영상이 제대로 안 나올 때부터 뒤쪽의 진행석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가서 내가 해결하고 싶었다. 물론 이제 나는 포럼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 별 관련도 없지만, 지난해 경험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당장이라도 뒤로 가서 뭐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 알아봐야 할 것만 같았다. 그 뒤에도 문제가 있을 때마다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동영상이 조금만 늦게 뜨면 이거 또 잘못되는 거 아닌가 싶어 가슴 졸였다.

 마음 편하게 청중석에서 강연을 그저 즐기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포럼 기획 부서에서 일할 때, 공연 기획자와 비슷한 이벤트 기획자의 '애환'을 느꼈다는 내용을 글로 쓴 적이 있다. 이제는 포럼 일을 손에서 놓고 취재 기자로 복귀했는데도, 포럼 현장에 가니 마치 내가 여전히 그 포럼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에릭 휘태커의 세션이 좋았다는 평가를 받자 마치 내가 칭찬 받는 듯 기분이 좋아졌고 자랑스러웠다. 이거 역시 내가 아직도 기획자의 티를 벗지 못한 증거다. 게다가 포럼에 별 문제가 없었으면 모르되, 문제가 생기니 도저히 그냥 청중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한 번 '기획자'의 입장에 서 본 사람은 온전하게 순수한 '청중'으로 돌아가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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