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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혁과 리처드 용재 오닐의 듀오 연주회. 요즘 공연 볼 기분도 기운도 아니었지만, 무대에 오른 두 젊은이를 보고 있자니 미소가 떠올랐다. 둘이 평소에도 친하다더니, 연주자들이 좋아서 즐겁게 연주한다는 느낌이 객석에까지 전해졌다. 

그런데 임동혁과 리처드 용재 오닐이 마지막 앙코르로 슈베르트 '아베 마리아'를 연주하기 시작하자마자, 가슴이 턱 하니 내려앉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침상 옆에서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성악곡을 골라 틀어드리고 있었는데, 슈베르트 '아베 마리아'도 그 중 하나였다. '아베 마리아'가 울려퍼지자 한동안 아무 말씀 없이 누워만 계셨던 아버지가 갑자기 입을 여셨다. "구노냐?" 

아버지는 이 와중에도 내가 틀어놓은 '아베 마리아'가 슈베르트인지 구노인지 헛갈려서, 궁금해서 물어보신 것이다. '슈베르트에요' 하고 대답하고 나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고통스러운 투병 중에도 아버지의 호기심은 시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베 마리아'를 듣고 있자니 그 때 기억이 떠올라 눈 앞이 흐려졌다. 사실 그 동안 '레퀴엠'이 연주되는 공연에 못(안) 갔던 것은 이럴까 봐 걱정했던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공연에서 이렇게 아버지를 마주치게 되었다.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담담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공연장을 나설 때, 나는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몇 년 전 임동혁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돼 독주회를 열었던 적이 있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을 잃은 임동혁의 슬픔을 나도 연주를 들으며 느꼈고 숙연해졌었다. '아베 마리아'를 들으면서 그 때 기억도 다시 떠올랐다.

임동혁이 어제 '아베 마리아'를 연주한 것은 물론 누구를 추모한다거나 하는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만은 아버지를 기리는 추모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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